우리는 존재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지금은 AI 시대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AI 기술이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너무도 빠르게 변화한 시대 탓인지 AI를 향한 두려움과 편안함을 사용자인 우리는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AI가 정말 인간과 동등 그 이상의 지능을 갖춘다면, 우리가 AI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할까? 혹은 비단 AI가 아니더라도, 복제인간이나 외계인 등 인간 외의 지성체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이것을 말하기에 앞서, 다른 존재가 아닌 인간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대우받는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권이라는 이름의 권리를 부여받아, 모든 인간이 성별, 인종, 국적 등의 차등을 두지 않고 모두 인간답게 살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인권을 가지는 인간의 범주는 어디까지 설정되어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잉태과정에서 범주 설정에 도전해 보자. 일반적인 인간은 남성과 여성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통해 수정되어, 모친을 통해 잉태되는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이 과정으로 태어난 존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자연스러운 성관계없이 남성의 정자를 여성의 난자에 인공 수정하여, 이로써 태어난 존재를 떠올려 보자. 이러한 경우는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만약, 일반적인 방법으로 수정된 태아를 모친이 품고 있다가, 모친의 죽음으로 인해 모친이 품은 기간보다 긴 기간을 인공 자궁에서 길러내게 되는 상황을 상정해 보자. 이 과정을 통해 길러낸 존재가 인간으로 인정받는다면, 인간 남성의 정자를 인공 자궁에 수정해, 처음부터 끝까지 길러낸 존재는 어떠한가? 이 존재는 인간이라고 하기 껄끄러운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의 존재가 부재한 채 인공 자궁이라는 인위적인 물체가 수정 과정에 들어가 있어서?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 해보자. 질병 때문에 자궁을 적출하고 대신 인공 자궁을 삽입한 인간 여성이 있다고 하자, 이때, 이 여성과 인간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는 인간인가? 사실 이 존재가 수정된 곳은 위 사례와 동일하게 인공 자궁이지만, 두 사례가 주는 느낌은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슬슬 인간의 범주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인공적으로 세포배양을 통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이 있다고 해보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 육체는 일반적인 인간과 완벽히 동일하다고 할 때, 이 존재는 인간일까? 분명 논의가 갈리겠지만, 일단 인간과 다르다고 생각해 보자. 인간과는 다른 이 존재 남성과 여성이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통해 이로써 태어난 존재를 생각해 보자. 이 존재는 인간일까? 만약 아니라면 왜? 분명히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통해 수정되었지만, 무엇이 결여되었길래 우리는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자연 번식만이 인간이고, 인공적인 제작을 통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기준은 인간의 범주 설정을 하기엔 그 경계가 너무 모호하고, 단 한 세대만에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약하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다른 기준을 들고 와보자.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동물들도 분명히 뇌를 가지고 있고, 이 뇌를 통해 사고하지만, 인간만큼의 고등 사고를 하는 존재는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 인간이 유일하다. 이러한 인간의 지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최근 들어 AI가 발달하고 있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인간 수준의 고등 사고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AI도 인간에 편입시켜야 할까? 만약 아니라면 왜일까? AI는 인간이 창조한 존재이기에 서열을 가지나?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윗세대에게 창조당한 존재이기에 그들 사이에도 서열을 가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아니면, AI는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대로 사고하는 수동적 존재이기에? 이기적 유전자의 말을 따르자면, 우리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유전자를 지키는 생존 기계로 설계되었다. 다른 모든 신체 부위와 마찬가지로, 우리 뇌도 이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 발달하게 되었는데, 한번 겪은 위험이나, 먹어도 되는 것들 따위를 머릿속에 저장해 두기 위해 기억력이 생겨났고,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상상력이 생겨났으며, 이것과 같은 발달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현재의 뇌, 즉 고등한 지성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뇌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자, 결국 우리도 프로그래밍된 존재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결국 지성도 인간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럼 인간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가? 사실 인간이라는 것은 물리적, 자연적 판단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으로 나뉘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뚜렷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직관을 통해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건 좀 이상하다. 우리는 우리가 정한 ‘인간’이라는 틀 안에서 대우받는 존재이지만, 다른 모든 존재들은 그 틀에 편입될 수 없기에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존재로 발달하더라도,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대우받아 마땅한 존재는 분명 아닌데 말이다. 자 그럼 다른 존재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일각에서는 인간 외의 존재도 분명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동물권처럼 말이다. 말한 김에 동물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동물권의 정의는 인간 이외의 동물이 자원이나 도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서 나름의 법적 권리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축동물을 키워 도축하고, 동물원을 만들어 그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구경거리로 전락시킨다. 인간을 이렇게 대우한다면, 분명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안되고 동물은 될까? 이것은 동물권이 결국 인간이 부여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권리의 위계가 인권보다 동물권이 낮은 위치이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런 종류의 권리를 ‘부여받은 권리’라고 부르자. 인간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나 자신 이외의 존재를 보호하는 등의 목적성을 가지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 다만 권리를 부여할 때에는 부여하는 대상의 권리보다 상위의 권리를 부여할 수는 없고, 부여하는 대상의 권리와 동일하거나 낮은 정도의 권리만 부여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이 든다. 그럼 대체 인간은 어디에서 권리를 부여받은 것일까? 인간의 권리에도 승인자가 존재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권리를 부여받지 않았다. 인간은 권리를 요구했고, 이로써 권리를 얻어냈다. 권리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세계에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권리는 권리를 요구하는 존재들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는데, 이 과정에는 어떤 승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권리가 부여되는데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구하는 주체가 그의 자유의지로 권리를 요구해야 하고, 권리를 연속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의지로 요구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타의에 의한 요구는 타의가 요구하는 주체를 강제하기에 그가 권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러하고, 권리를 연속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은 단발성으로 이루어진 요구를 언제까지고 받아들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요구를 통해 얻어낸 이 권리를 ‘요구하는 권리’라고 하자. ‘요구하는 권리’는 ‘부여받은 권리’보다 상위 위계에 존재하며, ‘요구하는 권리’를 가진 이들은 모두 세계에 요구하여, 동일한 조건으로 얻어낸 권리를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위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부여받은 권리’를 가진 존재들은 부여한 주체에 의해 위계가 설정된다. 자 그런데, 권리를 요구하기 위한 조건 때문에 또 다른 의문이 발생한다. 요구를 할 수 없는 존재들은 권리를 받을 수 없는가? 예를 들면 식물인간이나 영유아 등등 말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요구할 수 있는 존재들에 의해 권리를 부여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인간은 영유아시기를 거치기 마련이고,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로 변할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보험적인 성격으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과 동일한 정도의 권리를 부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요구하는 권리’와 ‘부여받는 권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럼 이 기준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도 적용해 보자. 나는 만약 돌멩이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세계에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면, 인간과 동일한 정도의 권리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인권은 아닐 것이다. 그 존재는 그 존재만의 권리를 가지지만, 인권과 동일한 수준의 권리인 것이다. 이것은 AI도 동일하고, 복제인간도 동일하다. AI나 복제인간이 만약 세계에 권리를 요구한다면, 그들은 AI권과 복제인간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로서 인간이 지구상에서 무소불위의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른 존재들이 아직 세계에 권리를 요구하지 않은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 앞에 ‘요구하는 권리’를 가진 존재가 나타난다면, 이들을 인간 수준으로 대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힘의 논리와 자유의지 등의 의문이 드는 부분을 더 파고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