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반항해야하는가
글을 읽기 전에 아래 글을 먼저 읽고 오시길 바랍니다.
https://brunch.co.kr/@dc56d11267b0420/10
이전 글에서 우리는 삶의 부조리함을 이길 수는 없지만
그것에 반항함으로 세계가 앗아간 주체성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자유와 열정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가 왜 주체적인 삶을 되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삶을 살아가며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써 내려간다.
의미도 없고, 부조리하며, 고통만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부조리를 직면하고, 이에 반항하라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일지 모르겠다.
또, 이길 수 없는 부조리에 반항하는 것 자체가 그저 자기 합리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 부조리한 세상에 순응하고 살거나, 심지어는 자살하면 안 될까?
사실,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택을 통해 삶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이번에는 우리가 복싱 선수라고 생각해 보자,
상대 선수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챔피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링에 던져져 있고,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내가 왜 경기를 뛰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
대신 우리는 경기를 어떻게 뛰어야 할지를 정할 수 있다.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것
이 것의 차이는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살아야 하지?라는 공허한 질문의 답을 찾는 무의미한 행위로 삶을 허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질문을 붙잡고 살아갈 의무가 없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이미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주체성을 회복하며 삶을 자유로이 사는 것
이것이 부조리에 대한 반항의 의의인 것이다.
다시 이 글을 쓰게 된 처음 단락으로 돌아가서
지금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외로움이나 두려움, 경제적 실패, 대인관계
혹은 모든 다양한 이유에서의 우울감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이러한 고통을 겪게 되고,
그것이 때로는 자살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이러한 고통에 좌절하는 것은
우리가 어째서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객체성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부조리함을 회피하고 모른 척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세계에 완전한 객체로 내던져서
우리의 고통을 해석할 권리를 버리게 된다.
사실 무조건적으로 삶의 주체성을 회복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굳이 우리가 삶의 주체성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를 대라면
나의 고통이 타인의 선택이나 부조리한 세계에게 끌려가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서 비롯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주체성의 회복은 세상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결국 나의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얻어내야 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