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영 Aug 17. 2022

육아의 늪

#2


22/05/20

눈을 뜬다. 평소 같았다면 해가 뜬 후겠지만, 적막한 어둠이 깔린 새벽이다. 그렇다. 이렇게 ‘새벽 수유’의 늪이 시작됐다. 아이는 모두가 잠든 고요한 순간에도 배가 고프다며 보챈다.


그나마 분유를 빨리 타서 적절한 시점에 젖꼭지를 입안에 넣는다면 다행. 이미 신호가 떨어진 후, 분주히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집안이 쩌렁쩌렁 울릴 듯 울음소리가 꽉 찬다. 그래도 아이가 우는 거니까 이웃집에서도 이해를 해주겠지? 이런 쓸데 없는 걱정보단, 얼른 분유를 물에 녹여서 아기의 배를 채우는 것이 현명한 길이겠지…


분유병을 입에 문 아들의 얼굴엔 배냇짓이 묻어난다. 천사가 따로 없다. 이런 순간 때문에 육아를 해나갈 수 있는 거겠지?


새벽부터 일어나 갓난 아기와 씨름했지만, 그래도 첫 날이라 버틸만하다. 중요한 건 이런 일과가 하루, 이틀의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물론 끝이 있겠지만…) 이 ‘육아의 늪’에 점차 발이 빠지고 있다.


삶의 의지를 꺾게 만드는 이 찰나의 감정, 언제 느꼈더라? 가만 생각해보니 수습 기자 시절, 처음 경찰서 2진 기자실에 짐을 풀고 나서였다. 새벽까지 이어진 보고와 욕(물론 선배의)을 뒤로 하고 기자실 바닥에 곯아 떨어진 후 눈을 떴을 때, ‘퇴사를 할까’ ‘삶을 마감할까’ 두 감정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다행히 두 마음이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던 건, 인간은 누구보다 적응에 민감한 동물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첫 날이 가장 힘겹지만, 그 낯설음은 점차 익숙해지는 무언가가 된다. 그렇다. 이 전쟁같은 순간도 오늘이 가장 어렵고, 낯설지 않겠나. 이런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보며 하루를 또 넘기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