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순간 (下)

by 고양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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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방학이 와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방학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멈춰버린 학기가 머릿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선생님, 귀엽죠?


하며 자신이 그린 고양이 그림을 자랑하는 학생. 알림장에 부모님 확인을 잘 받아오라는 잔소리에도 묵묵히 3일에 한 번씩 몰아서 가져오는 학생. 점심시간에 아이돌 노래에 맞춰 칼군무를 추는 학생, 발표할 땐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인데 체육할 땐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굉음을 내는 학생. 매 쉬는 시간마다 “다음 교시에는 뭐해요?” 묻는 학생. 복도가 노래방인 줄 착각한 나머지 옆 건물까지 들릴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학생. 뭐가 이쁘다고 자꾸만 생각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오른 학생들의 모습이 괜한 웃음을 짓게 한다.







멈춰 선 순간, 지금까지 걸어온 것들이 보인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 그 속의 작은 것과 큰 것들. 지겹다며 마음에 되뇌다가도 막상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은 마치 머릿속에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듯하다. 그래서 멈춤은 참 묘하다. 부산스러울 때는 탈출구를 찾게 하지만, 정작 고요할 때는 다시 소란을 그리워하게 한다. 봄이면 여름을, 여름이면 가을을 기다리듯, 마치 계절의 순환과도 비슷하다.


결국 멈춤은 손실이라기보다는 이익일지 모른다. 멈추지 않았다면,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그냥 지나쳤겠지. 팔을 다치지 않았다면 새벽 네 시 반의 세계가 이런 색깔인지 몰랐을 테고, 방학이 없었다면 사건사고 가득한 교실의 세계가 이런 색깔인지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선호하는 색깔이 아닐 수도 있지만, 멈춤은 그런 색을 굳이 한 번쯤 들여다보게 만든다. 2학기 중반에 다다라 과부하에 걸린 나는 겨울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또 개학을 떠올리겠지. 그것이 멈춤의 묘미니까, 때로는 멈춰 서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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