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배우_2

애증의 상대

by 윤주나

연기 훈련을 하다 보면 애증이란 감정을 느껴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사람들마다 애증의 대상이 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애증의 대상은 연기다.


그래서 나는 애증의 상대를 두어야 할 때 연기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과 상황들을 떠올린다.

아무리 해도 안되는 연기를 계속해서 하겠다고 애쓰고 있는 내가 안쓰럽게 느껴질때도 있다.

배우가 되고자 서울에 올라왔는데, 여전히 배우가 되지 못했다. 고집 아닌 아집을 부려서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열심히 할수록 회색의 커다란 시멘트 벽에 맨몸으로 부딪히는 기분을 매일매일 느꼈다.

어떤 날은 홀로 불 꺼진 집에 들어왔을 때 어두운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 거 같아 두려움에 쌓여 현관 앞에서 엉엉 울었고,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앞에서 누구한테 향한 화인진 모르겠지만 쌍욕을 퍼붓고 온 적도 있었다. 이렇게 힘든 길인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말걸 하며 후회도 수십 번, 하지만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란 질문을 수없이 해보았지만 온전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그러나 얼마 전 한숨도 자지 않고 대본을 보고 새벽 첫차를 타고 연습실에 갔는데

연습실 거울에 비친 퀭한 나를 보는 순간 '지금 이 새벽에 한숨도 자지 않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란 의문심이 나에게 들었고

그때 느꼈다. 아직까지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구나. 그리고 연기를 잘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연기를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연기를 좋아하고 제발 나 좀 봐달라고 이런 나를 인정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그렇게 매달릴수록 상대는 점점 더 멀어지고 대답 없이 차가운 시선만 던지는 것. 그래서 너무너무 미운데 미워할 수 없는 거

이게 바로 애증이란 거겠지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거라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멋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현실은 꿈을 포기하라고 한다. 이만큼 했는데 안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한다.

나도 이젠 그 말들을 가슴 깊이 느끼고 포기해야 할 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에 언젠가 연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연기를 포기했다는 말 대신 연기와 좋은 이별을 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나의 애증의 상대는 나에게 온 마음과 에너지를 쏟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걸 알려주었다.

짝사랑했던 그 시간들은 상처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먼 미래의 내가 어디선가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치유할 수 있는 단단함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연기가 밉지만 좋아하고 언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헤어져도 잊지 못할 거 같다.

꿈이면서 나를 성장시켜준 꿈.


마지막으로 적어도 아직까진.. 내가 좋아하는 연기에게 한마디 하겠다.

"야! 내가 이만큼 너한테 매달렸잖아 이제 밀당 그만하고 한 번만 내 손 좀 잡아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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