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제주도에서 택시기사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전해주었다.
"제주도는 날씨가 너무 변덕스럽네요. 운전하시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란 질문에
"아, 제주도는 원래 그래요. 그래서 이런 날씨에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제주도를 좋아하는 이유지. 나는 제주도가 너무 좋다.
제주도는 참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이상한 섬이다.
제주도에 잠시 살았을 때를 돌이켜보면 눈폭탄을 맞으며 걷다가 해가 뜨는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신기하다며 웃었고, 비가 오면 운치가 있어서 좋았고, 눈이 와서 발이 묶여 움직이지를 못해도 흰 세상이 되어서 좋고, 날씨가 더우면 차를 세워두고 바다에 뛰어들 수 있어서 좋고, 맑으면 그냥 좋다.
또 버스를 한 시간 기다려야 하면 정류장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며 책을 가방에 가지고 다녔고, 30분 넘게 걸어야 할 때면 오히려 좋아라 했었다. 밤하늘에 별이 정말 많다란걸 그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하철에선 휴대폰에 고개를 파묻고 액정 속의 사람을 보며 웃음을 짓고, 지하철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짜증을 내고, 어떤 이유인진 모르지만 빠르게 지나가다가 부딪히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고,
조금이라도 피해 보는 일이 생기면 성질을 내기 바쁘다.
더 여유로운 내가 되는 게 목표이자 가장 이루기 어려운 하루들을 보내고 집에 오면 공허함만 남는다.
이번 제주도여행은 좋게 말하면 힐링 여행이지만 사실은 서울에서 도망친 거다.
그래서 아무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숨 쉬고 싶었다.
일 년 만에 본 제주도는 작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 있어주었다. 날씨는 맑았다가 금세 먹구름이 하늘에 드리우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길에는 아직 잎이 올라오지 않아 앙상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나무들 아래에는 노란 유채꽃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제주도에 도착해 숙소로 가야 하는데 20분째 기다리던 버스가 오지를 않아서 다른 정류장에 갔고, 30분 기다렸는데 사람들이 가득 차서 타지를 못했고, 그다음 버스도 타지를 못했다.
버스를 두대째 보내고 나서야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고, 무거운 캐리어를 7시간 내내 끌고 다녀도 힘들지 않았고, 가고 싶었던 식당을 가지 못해 눈앞에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이상한 사람을 만났지만 근데 또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새벽 일찍 일어나 바닷바람 맞으면서 러닝 하고, 또 다음날엔 비 맞으면서라도 러닝을 하기도 했다.
참 이상하다. 서울에선 불편이 불만스럽게 다가왔던 게, 제주도에선 불편이 해프닝이자 에피소드로 기억된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제주도다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다시 또 현실에서 해내야 할 일들이 생각나 몸에 긴장이 들어가는 거 같아서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힘을 뺐다. 제주도의 여유가 오랫동안 몸에 남아있으면 좋겠다란 마음을 가지고.
아직은 먹구름이 파란 하늘보다 더 많은 시기이고 파란 잎들이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고 몸 안에 가득 찬 숨을 내비우는 사이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먹구름은 개고, 초록색의 나뭇잎들이 사방에 펼쳐지고 빨간색, 분홍색, 주황색, 보라색 등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며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봄의 모습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묵묵히 추운 겨울을 그 자리에서 지켜내면서 버티는 제주도의 겨울처럼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 구멍이 뚫려도 묵묵히 견대내는 현무암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허허 그러려니'하는 제주도 기사님처럼
나도 '그러려니' 하면서
도망쳐 온 제주도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뒤집어 보면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일 수도 있겠다.
예전엔 낭떠러지 끝에 매달려 울고 무너지기만 했지만 이젠 잠시 어둠을 도망쳐있다가 한숨 고르면서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어딘지 내가 나를 잘 안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