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이웃이 준 상추를 씻다가 아주 작은 달팽이를 발견했다. 귀엽고 불쌍해서 순간 멈칫했지만, 내가 파리, 모기 등 생명이 소중하다고 모두 키울 수는 없기에 그냥 상추 씻는 물로 흘려보냈다, 새벽에 자다가 문득 아침에 먹을 잡곡밥을 불려야 하는 게 생각나서 보니 업어놓은 쌀 씻는 그릇 속에 어느새 달팽이가 먼 길을 기어올라와 딱 붙어서 고이 앉아있었다. 애틋하기도 하고 생명력에 놀라 작은 집을 만들어서 싱싱한 상추잎과 촉촉한 솜도 넣어서 나름 아늑한 집을 만들어 줬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고 자기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다. 경제 주체든, 작가든, 종교인 등등.
살기 위해 이익에 충실하는 것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익이 타인을 해하고, 구조를 왜곡하며, 진실을 감추기 시작하면 그건 생존이 아니라 착취이다.
오늘날의 병원의 세분화된 분과체계는 고객을 위한 것인가, 카르텔을 위한 것인가? 표면적으로는 전문화를 통해 정확한 진단과 고급 치료를 가능하게 해 주고 환자에게 더 세밀하고 전문적인 진료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연 의료 카르텔은 분과 세분화를 통해 진입장벽을 높이고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며, 병원 내 회전을 증가시켜 결국 환자를 여러 과를 돌아다니게 만든다. 보험체계도 수가 제도와 결합하여 수익을 극대화하고. 환자는 파편화된 정보와 책임을 감당해야 하고, 의사는 전문성의 틀 안에 갇혀 총체적 판단을 회피하기 쉬워진다.
구글의 알고리즘(유투부, AI 추천 시스템)은 겉으로는 고객이 좋아할 만한 것을 정확히 추천해 주는 친절하고 맞춤형 서비스로 사용자 만족의 극대화를 한다. 하지만 구조적 현실은 사용자의 수준을 고착시킨다. 뇌의 패턴을 빠르게 포착하여 자극-보상 루프를 만들고 사용자의 사고 깊이, 확장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사용자는 자기 알고리즘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이는 곧 광고 클릭, 체류시간, 구독을 통해 기업의 수익으로 연결된다.
고객이 주체가 되려면 개인들이 이런 구조적 시스템을 먼저 인지하고, 병원에선 전체적 진단 역량과 건강권 회복, 플랫폼에선 의도적 탐색과 알고리즘 바깥의 정보 소비가 필요하다.
결국 현실에서
정보는 과잉되지만, 진실은 조용해지고
연결은 많아졌지만 깊이는 사라지고
이익은 집요해졌지만 진심은 망설여진다.
어릴 적 아버지는 자신보다 공동체, 타인, 이념을 앞세운 삶을 사셨다. 보기엔 아름다워 보여도 현실에선 가족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자신의 가족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립운동가들 후손들의 헐벗음도 마찬가지다. “전체의 선”을 위해 자기 삶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희생하신 분들은 자녀들에게는 상처이고 부재, 방임, 결핍의 서사로 남을 수 있다.
내가 중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받은 진한 상처는 내게 세상은 ‘진심은 위험하다’라는 얼얼한 교훈을 남겼다. 그래서 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타성의 유전자를 억지로 누르려 살려 애썼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게 어쩌면 본성을 참고 거스르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부터는 상처 이후에도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그냥 의도 없는 따듯함을 나누고 이타성을 전략이 아니라 생명력으로 간직하고 살려고 하는 것에 이제는 조그마한 감사함을 느낀다.
진심은 효율보다 느리다. 아니 역사를 보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는 모든 시스템을 이겨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