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함 11화: 은은함과 강함은 반대가 아니다

“은은함은 약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힘이 제거된 상태다.

by 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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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까지 우리는 실천을 다뤘다. 말투, 눈빛, 몸짓, 관계. 어떻게 힘을 뺄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큰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힘을 빼면 약해지는 거 아닌가?"


아니다. 정반대다.


진짜 강한 사람이 힘을 뺀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간 현자들이 발견한 진리다. 무술가들이 깨달은 것이고, 예술가들이 실천한 것이고, 철학자들이 가르친 것이다.


은은함과 강함. 이 둘은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이다.


오해: 은은함 = 약함?


먼저 오해부터 풀자.


사람들은 힘을 빼면 약해진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낮추면 → 존재감이 없어진다

천천히 말하면 → 답답해 보인다

침묵하면 → 무시당한다

물러서면 → 지는 거다


그래서 힘을 준다. 크게, 빠르게, 많이, 세게.

하지만 관찰해 보라.


진짜 강한 사람들을.


그들은 힘을 주지 않는다.


동양철학: 물은 가장 부드럽고 가장 강하다


노자의 도덕경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強者莫之能勝"


천하에 물보다 부드러운 것은 없으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함에 물을 능가할 것이 없다.


물을 보라.

형태가 없다.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 밀면 피한다. 막으면 돌아간다.

가장 부드럽다. 가장 약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위를 뚫는다. 산을 깎는다. 협곡을 만든다.

어떻게? 힘으로? 아니다. 끈질김으로. 그리고 저항하지 않음으로.


바위는 단단하다. 강해 보인다. 하지만 부러진다.


물은 부드럽다. 약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긴다.


부쟁지덕(不爭之德): 다투지 않는 덕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오직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다.

다투면 진다. 역설적으로.

상대를 이기려 하면, 상대도 저항한다. 힘으로 맞선다. 갈등이 커진다.

하지만 다투지 않으면? 이길 것도 질 것도 없다.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가장 강한 승리는 싸우지 않는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억지로 하지 않음

억지로 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한다. 물 흐르듯. 바람 부듯. 나무 자라듯.

힘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일어난다. 저절로.


씨앗을 심은 사람이 억지로 잡아당기면? 죽는다.

그냥 두면? 자란다. 스스로.


가장 강한 힘은 억지로 쓰지 않는 힘이다.


서양철학: Sprezzatura - 노력을 숨기는 기술


이탈리아 르네상스

16세기 이탈리아. Baldassare Castiglione이라는 사람이 책을 썼다. "The Book of the Courtier(궁정인의 책)".

그 안에 개념이 하나 나온다.


Sprezzatura(스프레차투라).


뜻은? "노력을 숨기는 기술" 또는 "공들이지 않은 듯한 우아함".


진짜 대가는 쉬워 보인다. 편안해 보인다. 마치 연습 안 한 것처럼. 애쓰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그게 가장 어렵다. 수천 시간의 연습 끝에,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피아니스트를 보라. 초보는 온몸에 힘을 준다. 건반을 세게 친다. 노력이 보인다.


대가는? 손가락이 흐르듯 움직인다. 편안하다. 마치 숨 쉬듯. 하지만 소리는 더 깊고, 더 풍부하고, 더 강하다.


진짜 강함은 쉬워 보인다.


Kenny Werner - Effortless Mastery

재즈 피아니스트 Kenny Werner의 책. "Effortless Mastery(노력 없는 대가 경지)".

핵심은?

애쓰지 않을 때 최고의 연주가 나온다.

완벽하게 하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잘 보이려고 애쓰면? 긴장한다. 막힌다.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놓아주면? 몸이 알아서 한다. 수천 번 연습한 것이 저절로 나온다. 그게 진짜 대가다.

진짜 대가는 애쓰지 않는다.


무술: 힘을 빼야 강하다

태극권

태극권을 보면 이상하다. 느리다. 부드럽다. 춤추는 것 같다.

"이게 무술이야?" 의심스럽다.

하지만 원리를 보라.

"借力打力(차력타력)" - 상대의 힘을 빌려서 친다.

상대가 밀면? 버티지 않는다. 피한다. 흐른다. 그리고 그 힘을 돌려준다.


상대가 세게 밀수록 세게 넘어진다. 내가 힘을 쓴 게 아니다. 상대가 자기 힘에 넘어진 것이다.

저항하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한 저항이다.


합기도

합기도도 비슷하다. "和(화)" - 조화. "氣(기)" - 기운. "道(도)" - 길.

상대와 조화한다. 대항하지 않는다. 흐름에 맞춘다. 그리고 이긴다.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말했다.

"진정한 무술은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소룡: "Be Water, My Friend"

"Empty your mind.

Be formless, shapeless, like water.

You put water into a cup, it becomes the cup.

You put water into a bottle, it becomes the bottle.

Now water can flow, or it can crash.

Be water, my friend."

물처럼 돼라. 형태가 없게. 틀에 박히지 않게.

상황에 맞춰 변한다. 딱딱하지 않다. 하지만 강하다.

유연함이 강함이다.


예술: 덜어낼수록 강해진다


미켈란젤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말했다.

"조각은 돌 속에 이미 있다.

나는 그저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할 뿐이다."

더하는 게 아니다. 빼는 것이다.

다비드상을 보라.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한 것만 남았다. 그래서 강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수묵화

동양화. 특히 수묵화.

몇 번의 붓질로 대나무를 그린다. 산을 그린다. 새를 그린다.

디테일이 없다. 생략이 많다. 여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힘이다. 본질만 남았으니까.


미니멀리즘

현대 미술. 미니멀리즘.

Donald Judd, Agnes Martin, 백남준의 일부 작품들.

최소한의 요소. 최소한의 색. 최소한의 형태.

하지만 강렬하다. 압도적이다. 왜? 잡음이 없으니까. 순수하니까.

덜할수록 더 강하다.


비즈니스: 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철학과 예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용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Steve Jobs - Focus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왔을 때 한 일.

제품 라인을 대폭 줄였다. 수십 개 제품을 4개로.

"우리는 하지 않기로 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덜 만들었다. 하지만 더 강해졌다. 집중했으니까.


Warren Buffett - Say No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

"좋은 기회를 찾는 게 아니라, 나쁜 기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것에 No. 극소수에만 Yes.

덜 투자한다. 하지만 더 성공한다. 선택했으니까.


Essentialism

Greg McKeown의 책. "Essentialism(본질주의)".

핵심은?

"더 적게, 하지만 더 잘"

모든 것을 하려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힘이 분산된다.

핵심만 하면 강해진다. 집중하니까.

덜 하는 것이 더 강한 전략이다.


심리학: 취약함이 강함이다

Brené Brown - Vulnerability

취약함(vulnerability) 연구의 권위자.

그가 발견한 것?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가 진짜 강함이다."

약점을 숨기려 하면? 긴장한다. 방어한다. 힘을 준다. 하지만 연결이 안 된다.

약점을 인정하면? 이완한다. 열린다. 힘을 뺀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가온다.

왜? 진짜니까. 인간적이니까.

완벽한 척하는 사람은 믿기지 않는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신뢰된다.

약함을 보이는 용기가 강함이다.


Carl Rogers -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심리학자 칼 로저스. 인간중심 상담의 창시자.

핵심 개념: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클라이언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판단하지 않는다.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냥 함께 있다. 들어준다. 이해하려 한다.

그게 가장 강력한 치유다. 왜? 힘을 주지 않으니까. 강요하지 않으니까.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강한 개입이다.


위와 같이 힘을 빼는 것이 강함의 본질이다


동양철학에서, 서양철학에서, 무술에서, 예술에서, 비즈니스에서, 심리학에서.

모두가 같은 걸 말한다.


진짜 강함은 부드럽다.


힘을 주는 건 약하기 때문이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을 빼는 건 강하기 때문이다.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역설의 해결

"힘을 빼면 약해지는 거 아닌가?"

아니다. 정반대다.

근육의 힘을 빼야 진짜 힘이 나온다.

역도선수를 보라. 바벨을 들 때 온몸에 힘을 줄까? 아니다. 필요한 근육만 쓴다. 나머지는 이완한다.

초보는 온몸에 힘을 준다. 그래서 덜 든다. 피곤하다.

고수는 힘을 뺀다. 그래서 더 든다. 오래간다.


불필요한 긴장을 빼는 게 강함이다.


실천: 어떻게 이 철학을 살 것인가

이론은 아름답다. 하지만 실천은?


1. 관찰하라: 어디에 불필요한 힘을 쓰는가

지금 이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나?

턱을 악물고 있나?

호흡이 얕은가?

뭔가 증명하려 하고 있나?

알아차려라.


2. 물어라: 왜 힘을 주는가

두렵기 때문이다. 보통은.

무시당할까

약해 보일까 봐

지는 것 같아서

충분하지 않을까 봐

그 두려움을 인정해라. 판단하지 말고.


3. 실험하라: 힘을 빼면 어떻게 되나

다음 대화에서, 다음 회의에서, 다음 갈등에서.

힘을 빼보라.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라

천천히 말해라

증명하려 하지 마라

이기려 하지 마라

어떻게 되나? 무너지나? 아니면 오히려 강해지나?


4. 물처럼 돼라

벽에 부딪히면?

밀고 나가지 마라. 돌아가라.

상대가 저항하면?

힘으로 밀지 마라. 흐르듯 피해라.

목표가 막히면?

고집부리지 마라. 다른 길을 찾아라.

유연함이 강함이다.


결론: 강함의 재정의


우리는 강함을 오해했다.

강함 = 크게, 세게, 빠르게, 많이?

아니다.

진짜 강함 =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하게.


호랑이는 항상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조용하다. 하지만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산은 높이 솟아있지만 과시하지 않는다. 그냥 있다. 하지만 압도적이다.


물은 가장 부드럽지만 결국 이긴다. 시간이 걸리지만. 확실하다.


은은함과 강함은 반대가 아니다. 같은 것이다.

힘을 빼는 것은 약해지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질만 남는다. 그 본질이 강함이다.


“나는 요즘, 예전보다 더 굳이 힘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잘 되지 않는 날도 많다.”


다음 화에서는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합니다. 12화. 은은하게 살기.

어떻게 이 철학을, 이 실천을, 이 존재 방식을 일상에 녹여낼 것인가.

12화 예고: "은은하게 살기"

지금까지의 여정 돌아보기. 은은함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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