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상으로 환산하지 못한 시대의 무례함
1920년대, 전쟁과 재즈, 그리고 실존의 불안을 껴안던 시대.
문학은 리듬을 탔고, 철학은 질문을 벼렸다.
같은 방향으로 가지만,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문학과 철학은 나란히 있었지만 한 상(賞) 아래 놓이지는 못했다.
노벨문학상은 있다.
그러나 노벨철학상은 없다.
왜일까.
철학이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벨의 사유가 철학을 담아내기엔 얕았던 걸까?
노벨은 유언을 통해
“인류에 가장 공헌한 자에게 상을 수여하라”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물리, 화학, 생리학, 평화, 그리고 문학.
모두 뚜렷하고 측정 가능한 공헌의 기준을 지녔다.
하지만 철학은?
철학은 무엇을 만들지 않고,
답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세상은 진리를 말하는 이에게 상을 주지만,
진리 자체를 의심하는 자에겐 침묵을 건넨다.
그게 철학이었다.
1964년, 장 폴 사르트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그는 끝내 수상을 거부한다.
“나는 어떤 제도에도 나를 포장하게 두지 않겠다.”
사르트르는 평생 비판적 지성은 체제에 포획되어선 안 된다고 믿었다.
그에게 노벨상은 상이 아니라 인증서,
그리고 그 인증은 필연적으로 지성의 자유를 거래하는 계약서였다.
그는 단호했다.
사유가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라면,
권위는 반드시 의심되어야 한다.
철학이란 그런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철학은 상을 받지 못한 게 아니라, 상을 거부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유의 자유는 누구도 표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 깊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비판적 지성은 ‘과격하다’며 침묵당했고,
공적 담론에서 철학은 점점 사라졌다.
학교의 철학은 시험의 도구로 축소되고,
거리의 철학은 ‘불편한 말’을 한다며 밀려났다.
철학은 말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만을 말하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무거운 말은,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세상에선 침묵처럼 보였을 뿐이다.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했지만, 대화편은 시처럼 썼다.
철학은 문학을 경계했고, 문학은 철학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 틈, 확실함과 모호함 사이에서
인간의 사유는 숨 쉬고 자랐다.
문학은 상을 받았고, 철학은 경계 밖에 서 있었다.
그 경계는 늘 불편하고 애매했고, 그래서 더 절실했다.
철학은 상품이 아니고,
시장도, 심사위원도, 권위도 아니라
고요한 물음 하나로 인간을 뒤흔드는 사유의 격동.
그렇기에 철학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시대는,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이기도 하다.
질문은 상을 받지 않는다.
질문은 시대를 부수고, 그 잔해 위에서 다음 사유를 태운다.
노벨은 철학을 몰랐다.
아니, 철학은 노벨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늘 질문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상을 받지 않아도, 유명하지 않아도,
어떤 성취를 꼭 이루지 않아도 되는 삶.
단, 침묵당한 지성이 침묵하지 않도록
나는 늘 깨어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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