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덕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야기
2006년, 스타벅스 한 구석에서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던 대학생이 있었다. 화면이 버벅거릴 때마다 그는 투덜댔다. "그래픽카드 좀 더 좋은 걸로 바꿔야겠어." 그때만 해도 몰랐다. 그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회사가 15년 후 세상을 지배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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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개의 다른 언어
컴퓨터의 두뇌는 오랫동안 하나의 언어만 알고 있었다.
순차적 사고.
인텔의 CPU는 마치 훌륭한 수학 선생님 같았다.
복잡한 문제를 차근차근, 단계별로 풀어나갔다.
"1번 문제부터 차례대로, 정확하게."
그런데 어느 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아이가 나타났다.
엔비디아의 GPU는 시끄러운 초등학교 교실 같았다.
수백 개의 작은 두뇌들이 동시에 떠들어댔다.
"다 같이! 한꺼번에! 빨리빨리!"
처음엔 아무도 이 '시끄러운 아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임이나 하는 장난감 정도로 여겨졌으니까.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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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황 CEO의 다른 상상
젠슨 황이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할 때,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인텔은 이미 완벽한 제국을 건설해 놓았다.
더 빠르고, 더 똑똑한 단일 프로세서를 만드는 것.
그것이 컴퓨터 발전의 유일한 길이라고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황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왜 하나의 거대한 두뇌만 써야 할까?
작은 두뇌 수천 개가 협력하면 어떨까?"
그 시절 이런 생각은 거의 미친 소리였다.
컴퓨터는 '하나씩, 차례대로' 처리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황은 게이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3D 그래픽을 렌더링 할 때는 수백만 개의 픽셀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다.
각 픽셀은 서로 독립적이었고, 병렬로 처리할 수 있었다.
"이거다!"
그렇게 GPU의 철학이 탄생했다.
'병렬성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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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칩의 전쟁, 철학의 충돌
2000년대 초반, 두 거대한 철학이 맞붙었다.
인텔의 철학: "하나를 완벽하게"
- 단일 코어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 복잡한 명령어를 빠르게 처리한다
- CPU 하나가 모든 걸 다 한다
엔비디아의 철학: "여럿이 함께"
- 단순한 코어 수천 개를 만든다
- 간단한 연산을 동시에 처리한다
- 전문화된 칩이 특정 작업에 집중한다
처음엔 인텔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것 같았다.
PC의 심장은 여전히 CPU였고, "인텔 인사이드"는 품질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2012년, 모든 걸 바꾼 순간이 왔다.
딥러닝이 등장한 것이다.
AI가 학습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해야 했다.
마치 수백만 장의 사진을 한꺼번에 비교하는 것처럼.
이때 CPU의 순차적 처리는 너무 느렸다.
반면 GPU의 병렬 처리는 완벽했다.
황의 20년 도박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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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SMC와의 만남, 새로운 게임의 시작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반전이 있었다.
엔비디아는 칩을 '설계'만 했다. 실제로 만들지는 않았다.
이건 인텔과 완전히 다른 전략이었다.
인텔은 자신들의 공장에서 자신들의 칩을 직접 만들었다.
모든 걸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철학이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TSMC라는 파트너를 찾았다.
대만의 이 회사는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누구든지의 설계도를 받아서 최고 품질로 만들어드립니다."
이 만남이 게임체인저였다.
엔비디아는 오직 설계와 혁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TSMC는 세계 최고의 제조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했다.
각자의 전문성이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반면 인텔은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걸 해야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혁신의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황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칩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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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병렬성을 지배한 자
2023년, ChatGPT가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
사람들은 OpenAI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진짜 승자는 따로 있었다.
ChatGPT를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수만 개의 GPU.
그 모든 GPU에 "NVIDIA"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AI 혁명의 뒤에는 30년 전 게이머들을 위해 시작된
한 회사의 꿈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애플을 넘어섰다.
한때 '게임용 부품' 회사였던 곳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황 CEO는 여전히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무대에 선다.
30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하지만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순차적 사고의 시대가 끝나고
병렬적 사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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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음은 누구의 차례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만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 질문에서 다음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황이 30년 전에 그랬듯이.
늦은 밤, 실리콘밸리 어딘가에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