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피해온 질문
40년간 피해온 질문
서울 강남의 한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 김 모(52)씨는 겉보기에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형 로펌을 거쳐 독립했다. 강남에 사무실을 두고, 아파트 몇 채를 소유하고,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냈다.
하지만 50대에 접어들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술을 마셔도, 수면제를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지만 별다른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상담사가 물었다. "언제부터 법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김 씨는 당황했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주변에서 잘한다고 해서, 성적이 되니까... 그런데 정작 자신이 법을 좋아하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40년 넘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피해왔다는 것을. 그 피해온 질문이 불면증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김 씨와 같다. 중요한 질문일수록 더 열심히 피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언젠가는 다른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 뇌가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방법
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피할까?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7년 발견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이 답을 준다.
인지부조화란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이다. 뇌는 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
1. 행동을 바꾸기 (가장 어려움)
2. 믿음을 바꾸기 (다소 어려움)
3. 질문 자체를 피하기(가장 쉬움)
대부분의 사람들은 3번을 선택한다. 질문을 생각하지 않으면 불편함도 없으니까.
하버드 대학의 댄 길버트(Dan Gilbert) 교수는 이를 '심리적 면역 시스템(psychological immune system)'이라고 불렀다. 마치 몸의 면역 시스템이 바이러스를 차단하듯, 마음의 면역 시스템은 불편한 질문을 차단한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더욱 흥미롭다. UCLA의 매튜 리버만(Matthew Lieberman) 교수의 fMRI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믿음과 상충하는 정보를 접할 때 뇌의 특정 영역들이 활성화된다:
-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갈등을 감지하고 고통 신호를 보냄
- 등 쪽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상충하는 정보를 억제하려 함
- 편도체(Amygdala): 위협으로 인식하고 회피 반응을 만듦
놀랍게도 이는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와 같은 뇌 영역이다. 즉, 불편한 질문을 마주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아프다'.
♤ 방어기제라는 이름의 도피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이 불편한 현실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분류했다. 현대 심리학은 이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1. 부정(Denial)
"내게는 그런 문제가 없어"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무수히 많은 부정이 일어난다.
- "우리 관계는 괜찮아" (명백한 문제가 있는데도)
- "내 일은 의미 있어" (매일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 "돈이 전부는 아니야" (돈 때문에 모든 선택을 하면서도)
예일 대학의 피터 사 로비(Peter Salovey)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정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고, 면역력이 떨어지며,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높다. 마음이 거부하는 현실을 몸이 대신 표현하는 것이다.
2. 합리화(Rationalization)
"사실은 이런 이유 때문이야"
이솝우화의 '신포도' 이야기가 전형적인 합리화다. 포도를 따지 못한 여우가 "어차피 신포도일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엘리엇 아론슨(Elliot Aronson) 교수의 실험은 합리화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를 '노력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라고 한다.
- 힘들게 들어간 대학이 더 좋아 보인다
- 고생해서 얻은 직장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 어렵게 만난 연인이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는 객관적 평가를 왜곡시킨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가?"라는 질문을 차단하는 것이다.
,3. 투사(Projection)
"다른 사람들도 그래"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서 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버클리 대학의 로스 교수의 '거짓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 연구가 유명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과대평가한다.
- 게으른 사람은 "요즘 모든 사람이 게을러"라고 생각한다
- 부정직한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야"라고 말한다
- 불행한 사람은 "행복한 척하는 사람들은 가짜야"라고 믿는다
이를 통해 "나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라고 자위하며, "내가 변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피한다.
4. 치환(Displacement)
"진짜 원인이 아닌 다른 곳에 화풀이하기"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서 가족에게 화를 내고, 상사에게 혼나면 부하직원에게 짜증을 낸다. 진짜 문제는 다루지 않고 다른 대상으로 감정을 전환하는 것이다.
♤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용기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피하고 싶어 하는 근본적 질문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 키르케고르의 '불안'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불안(angs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 앞에서 느끼는 근본적인 어지러움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의 선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키르케고르는 이런 질문들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라고 했다. 오히려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봤다.
현대 신경과학도 키르케고르의 통찰을 뒷받침한다. 옥스퍼드 대학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적당한 수준의 불안은 창의성과 성장을 촉진한다. 너무 편안하면 안주하게 되고, 너무 불안하면 마비되지만, 적절한 불안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게 만든다.
* 사르트르의 '던져진 존재'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의미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뜻이다.
이는 무서운 깨달음이다. 아무도 내 인생의 의미를 정해주지 않는다. 부모도, 사회도, 종교도, 국가도 아니다. 오직 내가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사르트르는 이런 질문들을 피하는 것을 '악신앙(bad faith)'이라고 불렀다. 자신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거짓 믿음을 갖는 것이다.
- "나는 어쩔 수 없었어" (선택이 있었는데도)
-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분명히 선택했는데도)
- "다른 방법이 없었어" (다른 방법이 있었는데도)
*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Being-toward-death)'라고 정의했다. 죽음이 모든 인간의 최종 목적지라는 사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내가 죽기 전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이데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das Man)'의 방식으로 살면서 죽음을 망각한다고 봤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면서 자신의 유한성을 잊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연설이 하이데거의 통찰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인생의 큰 선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도구다."
♤ 회피가 만드는 삶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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