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낯선 곳에서의 시작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스리랑카에서 지정한 격리 호텔로의 이동 이었다. 이른 새벽에 도착한 호텔에서는 의료진에게 PCR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와야지 만 그 이튿날 체크아웃할 수 있었다. 사실 스리랑카는 도착하기 전부터 코로나로 인해 락다운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임시거처로 미리 예약했던 숙소의 집주인 분께서 딸 나이대의 젊은 외국인 여자애가 혼자 온다고 걱정하시며 식재료 같은 건 본인이 미리 구비해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굶기지 않을 거니 걱정말라며 연락 해주시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대로 불안과 든든함이 공존한 상태로 시작한 스리랑카에서의 근무는 도착한 날부터 바로 시작이었고 첫 한 달 여 간의 기간동안은 락다운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였다.
WFP(세계식량계획)의 시스템을 모르는 상태에서 락다운으로 시작한 근무는 내가 사 무실 내에서 어떤 동료들과 일하며 그들을 어떻게 서포트해야 하는지 오로지 노트북 화 면 너머 동료들의 음성을 통해 감을 잡아야 했고 특히 필드 사무소가 많은 WFP(세계식 량계획)이기에 사무소별 지역과 이름을 파악하는 것부터 충분히 어려웠다. 수퍼바이저는 Resilience(회복력 구축팀), Social Protection(SP, 사회적 보호팀), 그리고 Emergency Preparedness and Response(EPR, 비상 대비 및 대응팀), 이렇게 3팀을 담당하시는 분이 었기 때문에 나는 Resilience Building Assistant(회복력 구축 어시스턴트)라는 직함임에도 해당 파트뿐만 아니라 자연히 3팀 모두를 지원하게 되었다. 따라서 재택근무 기간 동안에 사무실 출근 없이 3팀의 프로젝트에 대해 파악하는 공부를 해야 했지만, 다행히 일 주일에 두 번씩이나 시간을 내서 1대1 미팅을 잡아 지도해주시는 수퍼바이저와 업무를 설명해주기 위한 팀별 인덕션 미팅을 준비해준 동료들 덕분에 락다운 기간 내에도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다.
첫 출근은 재미있게도 사무실이 아닌 필드사무소로의 출장이었다. 그렇다 보니 주로 같이 일하게 될 직원들의 얼굴을 화면이 아닌 실물로 보는 것이 출장 가는 차 안이었기 에 참으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락다운 기간 중 출장이라 직원 4명이 한 차에 타면서도 각 줄에 따로 앉아 가다가 출발한 지 2시간이 되어서야 휴게소에 내리면 서 각각 맨 앞과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던 수퍼바이저와 나는 제대로 된 첫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누구도 예상 못 했던 팬데믹, 전례 없었던 새로운 출장 방식은 너무나 독특했지만 ‘왜 하필 내가 파견 왔을 때 이런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상사들과의 첫 만남이 3박 4일의 출장이었고 그 시간 동안 내내 붙어 있으니 오히려 사무 실에서 첫 만남을 갖는 것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훨씬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지 금 생각해봐도 남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하고 감사한 출장기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