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금지와 13시간 단전
임시숙소를 떠나 정착해서 살 집으로 이사도 가고 내가 3개의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 이후 적응을 마쳤다 생각할 때 즈음, 스리랑카의 경제 상황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자연재해, 코로나로 망한 관광산업에 더불어 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며 달러는 동이 나고 국고가 거덜이 나 스리랑카 루피의 가치는 추풍낙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스리랑카는 결국 경제 위기로 디폴트 선언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솔직히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떠나야 하는 외국인으로서의 삶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피해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다. 국민들이 빈곤에 허덕이며 수입을 하지 못해 기름조차 구할 수 없게 되면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국가는 락다운이 풀린 지 채 몇 달 되지 않아 통행금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맨 처음의 통행금지는 그나마 종종 나갈 수 있었던 락다운에 비해 칼같이 확실했다. 거리에 군경 외에는 없었다. 식량과 물이 떨어지고 배달도 되지 않으니 문제가 되었기에 며칠 뒤부터는 잠시 정해진 시간대에 나갈 수 있게 바뀌기도 했다. 이 때 마트는 감자와 우유 같은 식자재가 언제 또 다시 집밖에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의 두려움에 순식간에 동이 나곤 했다. 며칠은 이동 가능, 그 다음 며칠은 또 통행금지, 이런 불안정한 상황의 연속은 지속되었고 근무시간 중에 갑자기 발동한 통행금지 제재에 전 직원이 급하게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일도 있었다. 기대했던 생일 날, 스트레스성 장염과 통행금지가 동시에 겹쳤을 때는 정말 섬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함이 극대화되기도 했다.
통행금지 기간을 더욱 버티기 힘들게 하는 것은 단전이었다. 기름을 구입할 여력이 없는 스리랑카에서 정전은 너무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고 한동안은 지역별로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서 돌아가며 단전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글을 작성하는 2022년 12월의 지금도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종종 예고 없는 단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통행금지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무더운 날, 에어컨 없이 버텼던 13시간 단전 경험은 내 인생 최장의 전기 없는 삶이었다.
사실 에어컨을 못쓰거나 하루에 3~4시간씩 정해진 시간에 단전하는 것까지만 경험했다면 그건 그나마 행운이 아니었을까? 한 번은 집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1분 아주 조금 넘게 갇히기도 했는데 딱 단전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제너레이터가 돌기 시작하면 금방 괜찮아질 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기분이 어떤 건지 실제로 느껴본 적도 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 관해서 트라우마나 지속적인 공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수퍼바이저가 질겁을 하며 당분간 본인의 집에서 지낼 것을 권하기도 했다. 오히려 그 때에야 아! 이거 진짜 위험했던건가보네!? 싶어 조금 더 나 스스로의 위험에 예민하게 굴어야겠다 라는 다짐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외에서 홀로 살 때에는 내가 나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기 때문이고. 슬픈 말이지만 아무리 현지 사람과 친해져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외지인일 뿐일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