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잘렸어요.”
트레이너N은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였다. 그의 눈매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는데, 그 진의를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을 흉보는 걸까. 아니면 나를 놀리고 있는 걸까. N은 본래 장난치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저 유쾌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다. ‘벤치 프레스’를 알려달라고 하자 자세를 순식간에 잡아 주더니, 바벨봉에 10kg짜리 원판 네 개를 꽂았다. 그는 봉 무게까지 합해도 60kg밖에 되지 않다며 심각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올해 목표는 벤치 세 자리로 잡읍시다”라는 말은 농담처럼 들렸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한 달에 두 번 약식 PT(Personal Training)를 제공한다. 대략 20분에서 30분 동안 운동을 알려주는 것인데, 무료다. 지금까지 꽤 유용했다. 잠들기 직전의 근육을 깨우는 느낌이다. 사실 5년 전 즈음에 PT를 20회가량 받았다. 몸이 엉망이었다. 아프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PT는 자연스레 근력과 근육량을 기르기보다 ‘재활’을 목적으로 하게 됐다. 바벨 스쿼트 등 ‘프리웨이트’를 배운 건 20회 가운데 5회조차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운동 신경이 없어서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다.
이후 혼자 운동을 했다. 하지만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사실상 그만뒀다. 빈곤한 운동 감각마저도 동면에 들어갔다. 약식 PT는 일종의 ‘채찍질’이었다. 지난달 초부터 웨이트를 아등바등 하고 있지만 역시나 서투르다. 자극점을 잘 찾지 못한다. ‘운동하는 것에 만족하자’라는 일념으로 일주일에 네다섯 번 다니지만 어설프다. 이런 내게 30분 남짓의 수업은 단비다. 짧은 시간이지만 감이 대충 잡힌다.
내게 배정된 트레이너가 처음부터 N이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J였다. J는 꽤나 능력 있는 트레이너였다.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미국 기관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트레이너와의 차별 포인트라고 할까. 그가 나를 담당한다고 했을 때 ‘땡잡았다’라고 생각한 이유다. 어쩌면 N보다 더 ‘프로페셔널’ 했다. 알려준 자세를 반복적으로 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몸 상태를 짚어줬다. 등 운동을 알려주며 오른쪽 광배가 활성화 돼 있지 않아서 자극이 덜 들어간다고 진단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스트레칭도 알려준다. (물론 N의 방식을 경험해 본 결과, 복잡한 지식을 아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J에게 정이 떨어지던 순간이 있다. 그가 ‘영업’을 했을 때다. 두 번째 수업이었다. 나와 그는 많지 않은 대화를 나눴고, 나는 스스로를 ‘취준생’이라고 소개했다. 정식 PT를 받으면 운동이 빠르게 늘긴 하겠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그는 수업이 끝난 후에 이번에 PT를 수강하면 할인이 된다는 말을 내뱉었다. ‘제가 취준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라는 짜증이 목구멍을 넘어 왔지만, “지금은 좀 어려워서요”라는 말로 대체했다. 어색한 기류가 잠시 흘렀고 침묵이 오갔다. PT 수강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담당 트레이너는 N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J의 영업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의아하게 생각하던 몇몇 지점도 말이다. 몇 주 전, 헬스장의 한 벽면을 차지하는 트레이너 소개란에서 J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헬스장에서 아주 가끔씩 보이기 시작했다. 또 헬스장에 다닌 기간은 기껏해야 한 달 조금 넘지만 못 보던 트레이너가 매주 늘어났다. 하지만 모두가 소개란에 게시된 것은 아니었다. 이 헬스장의 트레이너 관리는 상상 이상으로 냉혹하게 이뤄지는 것 아닐까. 헬스장 데스크 앞에 게시된 ‘이달의 트레이너’ 입간판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실적이 곧 생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본다.
N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J는 사직을 했지만 N이 특유의 장난기를 발동해 부풀렸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J가 실력 있는 트레이너라는 사실이다. 내 또래처럼 보이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트레이너를 하고 싶었으며 일이 대체로 재밌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의 자리는 열정만으로 차지할 수 없나 보다.
만약 모든 사태가 J에게 비참한 방식으로 돌아갔다면, 그가 실적을 내지 못했고 그래서 잘렸다면, 나를 영업하려던 그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가난한 취준생이라고 공공연히 말한 사람에게 PT 수강을 권유해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린 어디까지 얼마나 구질구질해야 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