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친한 지인의 추천으로
새로운 포지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랜만에 셔츠를 꺼내 입고,
구두를 닦았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잠깐 오래 봤다.
나쁘지 않았다.
인터뷰는 분위기도 좋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들이 있었고,
웃음도 몇 번 오갔다.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늘
희망처럼 들린다.
추천해 준 지인도 말했다.
"PD님, 느낌이 좋아. 좋은 소식 기다려."
오랜만에
"기다린다"는 단어가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며칠은
휴대전화를 자주 봤다.
알림이 울리면
괜히 심장이 먼저 움직였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 연락이 없다.
나는 괜히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조급해 보일까 봐.
대신 가벼운 카톡을 보냈다.
"일전 인터뷰 당시 시간이 짧아 전달드리지 못한 사업에 대한 제 의견을 전달합니다."
업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안부에 가까운 메시지였다.
답장은 왔다.
짧고 정중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주가 지났다.
휴대전화는 조용하다.
불합격이라는 말도 없고,
합격이라는 말도 역시 없다.
그 사이에서
나는 혼자 의미를 계산한다.
나이가 들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젊을 때는
안 되면 다른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한 번의 기회가
조금 더 크게 느껴진다.
집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웃어 보인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혹시"가 맴돈다.
혹시 내 자리는
조금씩 줄어드는 중일까.
50대의 실패는
단순한 좌절이 아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체력이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결과를 모른다.
하지만 기다림이 길어진수록
대답은 이미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내일을 준비한다.
가장은
확실한 실패보다
애매한 침묵이 더 무섭다.
나는 오늘도
휴대전화를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리고
딸들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