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마음속에 핀 자유
"그 엄마 있잖아, 한국 사람들이랑 안 어울리는 엄마."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좋은 의미든 아니든 이 근방에서는 저를 지칭할 확률이 높습니다. 사실 '안' 어울린다기보다 '못' 어울린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한국 특유의 정서와 리액션이 조금 어려웠거든요.
어머니는 제가 사회생활에 뒤처질까 걱정되셨는지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럴 땐 저래야 한다"며 참 자세히도 가르쳐 주셨지만, 서른이 넘도록 그 정서들은 제 마음의 결에 좀처럼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아마 저는 전생에 쭉 외국인이 아니었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20대를 미국과 캐나다에서 보낸 것도, 지금 말레이시아에 정착해 사는 것도 제게는 거부할 수 없는 순리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이곳에 오게 된 건 뜻밖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미국행을 준비하던 중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으로 비자가 거절되었고, 갈 길을 잃은 저는 운명처럼 말레이시아에 닿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저는 인생을 통틀어 가장 깊은 치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따스한 날씨와 그보다 더 따스한 사람들 틈에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위로를 받으며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찾았습니다.
영어를 엄청나게 고급스럽게 구사하지는 못해도,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덕분에 저는 한국인 커뮤니티보다 현지인 친구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과 더 깊이 교류하며 지냅니다. 누군가 제게 "영어를 잘하면 뭐가 제일 좋으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답하겠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그 만남이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한다"라고요.
이곳 친구들은 제게 정을 나누는 법, 사랑하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경제적 지표로는 우리나라보다 뒤처질지 몰라도, 타인을 존중하고 품어주는 마음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선진국'인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영어를 매개로 대화하며 저는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비로소 제가 가진 부족함들을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영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저는 이 드넓은 세계에서 이렇게 귀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다 보니, "우리 아이는 영어만큼은 꼭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엄마들의 간절함이 단순한 교육열을 넘어선, 세상을 향한 거대한 통찰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 성적이 좋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만날 수 있는 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더 많은 좋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강력한 '열쇠'를 갖는 일입니다.
우리 한국의 아이들이 저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좋은 것들을 배우고 즐기며 살기를 바랍니다. 영어라는 날개를 달고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길 소망합니다. 영어가 공부가 아닌 '표현의 자유'가 될 때, 아이들의 인생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넓은 지도가 펼쳐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는 제게 자유를 선물해 준 이 낯선 땅과 이웃들에게 감사하며, 한국의 영어 교육도 성적중심이 아닌 표현의 자유를 주는 영어 교육으로 변화하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