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의 고수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될까?

by 힐링영어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유난히 선명하다. 아마도 그 순간들이 몹시 못마땅했거나, 궁금했거나, 혹은 어떤 특별한 감정의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조용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전까지는 책을 즐겨 읽지 않았기에 이 단순한 진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책과 거리를 두게 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만화책 금지였다. 아버지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안 된다"라고 하셨고, 내게 말대꾸는 허락되지 않았다. 둘째는 위인전 전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딱딱한 표지의 숨 막히는 책들이 우리 집 책장을 가득 채웠다. 그 시절엔 출판사에서 아파트를 돌며 그렇게 전집을 한 질씩 팔곤 했다.

위인 전은 외형과 함께 내용도 문제였다. 열두세 살 무렵의 나는 위인전을 읽으며 의문을 품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기만 할까?'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은 늘 비범했고 성장 과정은 특별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니 위인전은 그저 과장과 오류가 섞인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는 책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런데 고3이 되어 막바지 피치를 올리며 공부를 하면서야 깨달았다. 독서 없이는 내 사고의 한계를 뚫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다짐했다.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책을 많이 읽게 하겠노라고.


아이를 낳은 후,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책과 멀어진 과정의 정반대로 행동했다. 유아기에는 책과 함께 놀아주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천 번이고 읽어주되, 싫어하는 책은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책을 읽을 무렵부터는 아주 조심스럽게 '유도'했다. 전집에 질렸던 기억 때문에 절대 한꺼번에 사주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책을 한 권씩만 사주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기술은 결국 '밀당'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할 때 "더 읽어라"라며 멍석을 깔아주면 안 된다. 오히려 책 읽는 시간을 '보상(당근)'으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를 다녀오면 먼저 숙제를 끝내고 씻게 한 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났을 때만 잠자기 전 잠깐의 시간을 허락한다. 아이들은 못하게 하면 꼭 그리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칼같이 불을 끈다. 그러면 아이는 뒷부분이 궁금해 내일 학교 갔다 오자마자 읽어야지 다짐하며 잠든다. 사실 책 읽는 자식이 대견해 뭐든 허락해주고 싶지만, 이 밀당에는 부모의 철저한 연기가 필요하다.


반대로 '채찍'으로 독서를 쓰면 안 된다. 뭔가 잘못했다고 게임 금지에 벌로 책 한 권을 읽게 하면 역효과가 난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저녁밥이 맛없다고 드라마 시청을 금지한다면 밥 차리는 게 즐거울 리 있겠는가. 내가 처음 책을 스스로 읽도록 한 책은 'Dog Man' 이란 만화책이었다. 그림이 재미있고, 내용은 아주 짧으니 처음 영어 원서 읽기를 시작하기에 너무 좋았다. 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Dog Man' 시리즈로 딜을 했다. 한 권을 열 번 정도 닳도록 보게 한 뒤, 아이가 다음 권을 간절히 원할 때만 하나씩 사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권을 한꺼번에 안겨주고 싶었지만, 그건 하수나 하는 전법이다. 그렇게 Dog Man 시리즈를 끝낼 때쯤 아주 약간 더 어렵고 재미있는 책을 "오다 주웠다" 하며 슬쩍 테이블에 두고 그저 지켜 보았다. 그렇게 아이의 독서는 날로 성장해 갔다.


결론 적으론 나의 아들은 엄마의 밀당에 말려들어 1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꽤나 많은 양의 책을 읽어 냈다.

그렇다. 나는 자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밀당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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