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의 교육일지

본질에 집중한 육아, 교육

by 힐링영어

주말 사이, 오래 머물던 울타리를 넘어설 준비를 마쳤음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사와 맞물려 산적한 과제들을 해치우느라 조금 늦은 인사였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다들 눈을 크게 뜨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느냐"라고 물어왔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짧게 답했다. "우리 아이의 배움 스타일과 꼭 맞는 곳에서, 진짜 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어서 힘든 결정을 해봤어." 평소 학교와 일상에서 '영감님' 같았던 내 아들을 지켜봐 온 엄마들이기에, 그들은 긴 말 대신 무언의 끄덕임으로 나의 결정을 읽어주었다. 중등의 문턱에서 왜 이런 파격적인 선택을 했는지, 그간 내가 공들여온 아이의 성장 단계를 복기하며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 영유아기: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기초 공사'

나의 커리어를 잠시 멈추고 아이 곁을 지킨 이유는 단 하나, '정서적 안정'이었다. 영유아기는 아이의 뇌가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를 결정하는 결정적 시기다. 토양이 비옥해야 어떤 씨앗이 뿌려져도 생명력을 터뜨릴 수 있듯, 나는 아이와 세상 사이에 단단한 신뢰의 지지대를 세우고 싶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초기 3~6년의 애착 형성을 강조한다. 나는 그 이론을 내 삶으로 증명하기로 했다. 커리어를 송두리째 바친 만큼 이 '미션'은 내게도 절실했다. 초보 엄마로서 잘 해내고 싶어 안간힘을 쓰던 그 시절은,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사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치열한 분투기였다. 인생을 육아에 갈아 넣은 만큼 내 공부와 경력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나는 한 인간의 가장 깊은 뿌리에 나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2. 초기 학령기: 토양의 깊이를 더하는 작업

유아기에는 정서에 집중했다면 여섯 살부터는 뿌리가 깊게 내려앉을 수 있도록 토양의 층을 넓히는 시기였다. 이때 나의 핵심 원칙은 '학습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였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부모의 과한 리액션은 부담감이 되어 용기를 꺾었고, 무관심은 흥미를 잃게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적절한 온도'의 용기를 주는 데 집중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 틀려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회복탄력성. 숫자나 한글 같은 기능적 학습보다 더 중요한 건 배움이라는 백지에 '공포'나 '압박'이라는 얼룩을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3. 초등 저학년: 새싹이 틔우는 시기, 인내의 시간

본격적인 국제학교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그 어떤 성적 압박도 주지 않았다. 힘들게 국제학교씩이나 보내면서 이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연히 과외 수업을 해 주지 않았으니 성적은 눈에 띄지 않았고, 조급함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어린 어깨로 감당해야 했던 점수의 무게가 훗날의 학업에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을. 진짜 공부가 시작될 때 폭발시킬 저력을 비축하기 위해, 나는 아이의 낮은 점수를 견디며 '공부가 싫어지지 않게' 만드는 데 전념했다. 그것은 나만의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집스러운 신념이었다.


4. 초등 고학년: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책임감'의 단계

고학년이 되면서는 '스스로 일구는 힘'을 강조했다. 국제학교의 Primary 단계를 마무리하고 Secondary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 점수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과업에 대한 책임'이었다.

다행히 3, 4학년 때 집중했던 독서의 힘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마냥 어린아이에서 '사고하는 인간'으로 진화했고, 5학년을 기점으로 선생님의 피드백도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스스로 할 일을 찾는 데 서툴다"던 평가는 6학년 말, "이해가 빠르고 자신의 과업을 주도적으로 수행한다"는 칭찬으로 바뀌어 있었다.


5. Secondary의 시작: 줄기를 올리고 '분갈이'를 준비하다

영국식 중등 과정인 7학년은 대학처럼 교실을 이동하며 스스로 스케줄을 관리해야 한다. 나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과 '성취의 즐거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양분을 잘 빨아들여 줄기를 올리듯 스스로 양분을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과제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 대신,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마주하게 했다. '노력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뼈아픈 아쉬움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했고, 함께 목표를 정해 성적을 한 단계씩 올리는 성취감을 맛보게 했다. 그 결과, 주요 과목들은 거의 A+과 B+ 사이의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8학년의 마무리를 앞둔 지금의 시점, 아이는 더 깊고 집중적으로 자기만의 속도로 배우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하여 분갈이를 준비하는 중이다.


12년의 교육 과정을 정리하고 보니, 마치 한 인간을 대상으로 한 긴 '종단 연구'를 마친 기분이다. 이 요약된 글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눈물과 콧물, 그리고 늘어난 나의 늘어난 흰머리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되었지만 말이다.

이제 아이는 튼튼해진 줄기를 가지고 새로운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려 한다. 더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 위한 선택이다. 이 여정이 성공적 일지, 혹은 다시 돌아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보내는 신호와 내 삶의 이정표가 그곳을 가리키고 있기에, 나는 기꺼이 그 길을 따라가 보려 한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13년간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잘해 왔다는 개운한 마음으로 오늘 밤은 단잠을 이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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