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며...
호기롭게 교육의 클리셰에서 벗어나겠노라 선언한 뒤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장벽은 다름 아닌 '거주'의 문제였다. 2019년, 말레이시아에 정착하며 나는 큰 결심 끝에 집을 한 채 장만했었다. 잦은 이동으로 지쳤던 삶을 갈무리하며, 부엌의 동선 하나까지 내 손으로 직접 짜 맞춘 리모델링을 거쳐 "이제 이곳에 발을 묶고 정착하리라" 다짐했던 소중한 내 집이었다.
그런데 7년 만에 그 정든 집을 두고 다시 '렌트 살이'를 떠나게 될 줄이야. 처음엔 나조차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생각을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8학년 내내 아이가 보내온 신호들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학교와 내 일정을 고려하니 남은 시간은 단 3주. 그 짧은 시간 안에 학교를 결정하고, 짐을 싸고, 살던 집을 정리하는 폭풍 같은 국면이 몰아쳤다.
3주간 박스를 싸고, 해묵은 물건들을 버리고 팔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이사를 온 지 5일째, 집은 얼추 정리가 되어간다. 이 믿을 수 없는 한 달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인생에서 정말 되어야 할 일은 때로 내 손을 떠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리고 격렬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내 머리는 여전히 이 급작스러운 전개를 논리적으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박스를 싸면서도, 다시 풀면서도 "지금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자문이 쉼 없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음만은 고요했다. 내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까. 머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쑤시고 아픈 허리와 손목, 손가락 마디마디가 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이 고생은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말이다.
이사 후 오늘로써 3일째, 새로운 Alternative Learning Center에서 공부를 시작한 아들은 매일 머리가 띵할 정도로 많은 과업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가 까다로운 아이라 뭐라고 할지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힘들지만, 진짜 스스로 배우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며 큰 불평 없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아이의 그 확신 어린 눈빛 하나가 내 집에서 살지 못하게 된 상실감을 깨끗이 씻어준다.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니 마음가짐도, 기분도 새롭게 단장한 느낌이다. 큰 무리 없이 이 과정을 마칠 수 있었음에, 그리고 아프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음에 깊이 감사한다. 이사 때문에 한 주를 건너뛴 연재지만, 오히려 이 물리적인 이동이 내 글에 더 단단한 실천의 무게를 더해준 것 같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