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지난주는 말레이시아 최대 명절인 '하리라야(Hari Raya)'였다. 주말을 포함해 무려 5일간의 긴 휴식이 이어졌다. 말레이시아는 공휴일이 참 많은 나라다. 본토 말레이인뿐만 아니라 중국계, 인도계 세 민족이 어우러져 살다 보니 각자의 명절인 하리라야, 중국의 추석(Mid-Autumn Festival)과 설날(구정), 디파발리(Deepavali)가 모두 공인된 휴일이다. 여기에 국왕의 생일과 가족, 친구들의 파티까지 더해지면 일 년의 절반은 축제의 열기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8년 차 거주자인 내게 이제 이 다채로운 명절들은 당연한 일상이자,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교육을 위해 이곳에 정착했을 때만 해도, 이 빈번한 휴일들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국제학교의 중간 방학(Half-term Break)과 긴 여름·겨울 방학, 그리고 각 인종의 명절과 국왕의 생일까지 꼬박꼬박 챙기는 학교의 학사 일정은 한국인 부모의 상식으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러고도 공부를 하겠다는 건가?'
주말에도 학원으로 향하고, 방학이면 더 치열한 '인텐시브 코스'에 돌입하며, 명절 연휴조차 단 한 글자라도 더 보길 권장하는 한국식 학습 체계에 길들여진 내게 이들의 멈춤은 일종의 '직무 유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자식만큼은 자유롭고 즐거운 교육을 받길 원해 이곳에 왔지만, 정작 마주한 여유 앞에서는 '비싼 학비에 비해 수업일수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본전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곤 했던 것이다. 가끔 교육열 높은 국제학교들이 자체적으로 휴일을 줄이면, 반기는 학부모는 있어도 반기를 드는 이는 없었다.
이번 휴일 기간 중, 아이가 새로 옮긴 대안학교의 교장이자 스승인 미스터 라즈(Mr. Raj)에게서 안내 메시지가 왔다. 연휴 중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 시간엔 자신이 학교에 나와 있을 테니, 질문이 있거나 공부할 게 있는 학생은 누구든 자유롭게 등교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아침부터 감동이었다. 그가 교육에 진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중한 휴일마저 자진 반납하며 아이들을 기다리겠다는 제안은 학부모로서 더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의 '한국인 엄마'가 다시금 깨어났다. 나는 슬쩍 아이에게 의중을 물었다.
"캐치업할 게 있거나 질문이 있으면 내일 가서 공부해도 된다는데, 넌 어떻게 할래?"
내 아들은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엄마, 난 주중에 숙제 한 번 안 밀렸고 진도도 제가 제일 빨라요. 휴일은 쉬라고 있는 날이잖아요. 난 아주 푹 쉬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놀 거예요."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지만 반박할 논리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드라마 속 장면처럼 아이를 차에 태워 학교 앞에 내려주고 싶었지만(물론 상상 속의 일이다), 그렇게 억지로 앉혀둔들 그 지식이 아이의 머리에 온전히 스며들 리 만무했다. 결국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럼 쉬어라. 대신 주중에는 놀 생각 꿈도 꾸지 마."
사실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 마음 한편에선 여전히 아이를 몰아세우고 싶은 욕구가 남아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내 아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꾹 참았을 뿐이다. 13살 사춘기 초입의 아들과 큰 충돌 없이 평화롭게 연휴를 넘긴 것에 감사하며,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욕심은 그저 유쾌한 상상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이의 자율성을 믿어주기로 한 이상, 엄마인 나의 인내심 또한 이 휴일만큼이나 길어져야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