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서서히 차오르는 자율의 근육
드디어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침 일찍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하고, 퇴근길에 다시 아이를 픽업해 돌아오는 길. 함께 간단히 저녁을 먹고 가벼운 운동으로 하루를 갈무리한다. 휘몰아치던 이사의 여독 뒤에 맞이한 이 심심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마치 커다란 보상처럼 더없이 평안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새로운 대안학교에 발을 들인 지 이제 일주일 남짓.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아이가 자신의 '할 일'을 대하는 태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늘 해야 할 숙제의 양과 우선순위를 스스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자율성에 맡겨진 과제들이라지만, 적당히 타협하기보다 죽는소리를 해가며 끝내 분량을 채워낸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주어진 몫을 해내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아이인 터라, 유튜브를 보며 숨을 고르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하루의 과업을 마친다.
잘 이끌어주기만 하면 내어주는 만큼 소화해 내는 아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새로운 학교로의 첫걸음은 나름 성공적이라 평하고 싶다. 눈에 띄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변화들이 확연히 보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고 있을 아이의 내면 또한 조금 더 믿어보기로 한다.
물론, 문득문득 불안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본능이다. 국제학교 시절 누렸던 다채로운 활동들과 그 시스템만이 줄 수 있는 장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자리에, 혹여나 아이가 놓치는 것은 없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이의 선택을 믿고 지켜봐 주기로 단단히 마음먹었으면서도, 정작 입 밖으로는 "이런 운동도 해보자, 저런 것도 배워보는 게 어떠니"라며 아이를 성가시게 하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역시나 시원치 않다. 결국 그 걱정 섞인 말들을 억지로 입안에 다시 구겨 넣으며 깨닫는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엄마의 조급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믿어주는 시선이라는 것을.
급하게 마음먹지 않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이제 막 새로운 토양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아이에게 필요한 건, 흔들어대는 손길이 아니라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기다림일 테니까. 나도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싶지만 그것을 참아내며 숨을 한번 더 고르며, 나는 다시 한번 '지켜봐 주는 사랑'의 무게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