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캠프의 한 구석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아이

by 힐링영어

말레이시아 한 영어 캠프의 활기찬 오리엔테이션 날이었습니다. 각 교실에서는 원어민 선생님들과 신나는 게임이 벌어지고, 아이들은 저마다 관심 있는 곳으로 달려가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그 소란스러운 즐거움 사이로 제 시선을 확 사로잡은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서우였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서우는 신나는 음악도,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그저 멀뚱히 서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도 아닌 놀이 시간에, 그 작은 어깨가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자꾸만 마음이 쓰였습니다. 서우는 수업도 얌전히 잘 따라왔지만, 발표할 때면 어김없이 그 슬픈 얼굴이 배어 나왔습니다.


많은 부모님은 아이가 영어를 못해서 움츠러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서우는 영어를 못해서 슬픈 게 아니라, 이미 마음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상처에서 피가 나면, 단순히 피가 멈췄다고 해서 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살이 완전히 아물 때까지 연고를 발라줘야 하고, 물이 닿지 않게 관리해야 하며, 매일 밴드를 갈아붙여 주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에는 그렇게 최소한의 정성을 들입니다. 하지만 마음에서 피가 날 때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공부'라는 더 큰 명분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자주 무시되곤 합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피 흘리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비싼 과외도, 프리미엄 영어 캠프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픈 마음을 숨기기 위해, 들키지 않기 위해 아이는 적당한 자세를 취하며 자신을 숨깁니다. 마음이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밀어 넣는 것은, 짓물러 있는 상처 위에 거친 옷을 덧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영어가 싫은 게 아니라, 영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그 무게에 질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날 저는 서우에게 다가가 영어가 아닌 이 말을 건넸습니다. "괜찮아, 서우야. 그냥 여기 있어도 돼. 그러다 궁금한 곳이 생기면 그때 천천히 들어가 봐도 괜찮아."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영어 단어 하나가 아니라,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허락과 안전한 기다림이었습니다. 저는 서우의 부모님께 차마 묻지 못한 말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어머니, 다른 아이들이 웃고 떠들 때 우리 서우의 표정이 어떤지 혹시 보이시나요?"

아이의 표정을 먼저 읽는 것, 피 흘리는 마음에 밴드를 붙여주는 것. 저는 그 치유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영어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음에 영어가 부드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저는 오늘도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먼저 살피는 '힐링영어'의 길을 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