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파악 5

딸, 크리스마스

by 가비

잘 자고 있었는데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더 자고 싶었지만, 이미 멀뚱멀뚱해진 정신머리는 일어나라며 등을 떠밀었다.

눈을 뜨고 옆에 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6시 23분.


어제 피곤해서 드러누웠던 시간이 23시 38분쯤 되었던 것 같은데.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증명되는 순간인가?


에이, 그래도 아니겠지라며 부정을 해보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은 수두룩하다는 걸 보고, 듣고, 경험(?)한 걸 감안하면
내가 늙은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일찍 일어났다.

인정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그냥 우연일 수도 있다. (어쩌면?)


가만 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조용히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딸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탄절이라고 마음의 표시라도 해 달라며 투정을 부릴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성인은 아니기에 말이라도 한 번 꺼내 보고 싶다.


딸은 아직 자고 있다.

잠이 많은 아이다.

쉬는 날에는 보통 오후 두 시는 되어야 깨어난다. 한창 클 나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밤늦게 자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잔다. 미인도 아닌데 미인들처럼 잠꾸러기다. (말장난)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냐?]라는 걱정까지 하게 만든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딸에게 이렇게 물어볼 생각이다.


“딸, 오늘 크리스마스인데 뭐 필요한 거 있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크리스마스날, 딸이라는 존재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즐겁고 행복하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딸이 브런치 작가 등록을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그 일로 요즘 좀 많이 삐져 있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검토받을 글 몇 편 써 놔.”


그랬더니 듣는 둥 마는 둥, 이렇게 대답한다.


“알아서 할 거예요.”


역시 귀여운 녀석이다. (부들부들)


딸은 책 읽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도 취미로 가져 보고 싶다고 한다.


“아빠, 글은 어떻게 써요?”


나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자알… 일기 꾸준히 써 봐.”

“그 대답 맞아요, 아빠?”

“맞을걸?”


그리고 그 이후, 나에게 더 이상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부들부들)


아니… 여러분… 일기 쓰는 것만큼 글쓰기 실력을 키워 주는 방법이 있나요? 없잖아요. 그렇죠?

일기만큼 글쓰기 실력을 제대로 키워 주는 방법이 있다면, 정말 한 번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작 나조차도 일기를 꾸준히 쓰지는 않았다.

나는 일기로 글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 11만 자를 쓰면서 노하우가 몸에 남은 쪽에 가깝다.

쓰다 보니 요령이 생겼고, 요령이 생기니 재미가 붙었고, 재미가 붙으니 멈추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딸에게 건넨 말은 내가 걸어온 길 그대로의 조언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은 맞다고 믿는다. 적어도 나 같은 경우를 보면 이 정도면 신기하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딸은 나와 같은 경우는 아닐 테니 다른 사람들처럼 일기를 자주 쓰면서 요령이 생기고 재미가 붙는 과정을 권해 주었을 뿐이다.


근데도 딸은 듣지 않는다. (부들부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아침 8시 24분을 넘어서고 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걸 정말 좋아한다.

딸이 일어나기 전까지 동네라도 한 바퀴 돌고 싶다. 다만, 왼쪽 발목이 버텨 줄지 모르겠다. 하늘을 보고,

태양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산책 나온 반려동물들을 구경하며 그렇게 걷는 시간이 참 좋다.


일단 나가 볼까? 발목이 버텨 주는 데까지 걸어 볼까? 오늘 새벽에 일어나 보니 잠자는 동안 조금 회복이 되었는지 발목에도 힘이 조금 붙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도전이라도 해 보자.

도전은 나쁜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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