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4

인생과 숙제

by 가비

요즘 나는

[건강이 재산이다]라는 말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최근 들어 왼쪽 다리에 이상이 생겼다.

바로 다리 저림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몸이 피곤해서,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줄 알고 넘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발목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서 있는 것도, 걷는 것도 어딘가 불안했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와 CT를 찍었고 결과가 나왔다. 척추 3번, 4번, 5번 사이. 아주 약간의 디스크가 흘러나와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수술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 말에 잠시 안도했지만, 이미 감각이 흐릿해진 다리에 대해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인생은 굴곡과 고비의 연속인 것 같다. 마치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하듯,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숙제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면, 다음 숙제가 또 조용히 찾아온다.


지긋지긋하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면, 신경질이 날 정도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누군지, 왜 이런 되지도 않는 숙제를 계속 내 인생에 무책임하게 던져 버리는 건지.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지칠 때까지 걷는 게 아니라, 지쳐도 걷는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시간이

내 인생의 작은 낙이었다. 이제는 감각이 희미한 이 다리가 다 나을지, 이대로 평생 갈지 알 수 없다.

만약 평생 간다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걷기를 포기한 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수많은 굴곡과 고비를 넘기며 수많은 숙제를 해결해 왔지만, 이번에 찾아온 숙제는 유난히 어렵다.

나에게서 가장 즐거운 취미 하나를 조용히 빼앗아 가려한다. 그나마 음악을 들으며, 지쳐도 걷는 순간이

내게 남은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최악의 숙제다.


이건 풀 수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도, 너무 어렵다. 너무 어려운 숙제가 와 버렸다.


그래도 받아들여야겠지.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니까. 이미 찾아온 숙제를 거부할 수 없다.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가 가진 공통점일 것이다. 열심히 살아도 원하지도 않은 숙제가 찾아오고,

우리는 그것을 풀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나를 풀어내면, 또 다른 숙제가 찾아온다. 이번에 나에게 찾아온 숙제는 나에게서 가장 즐거운 취미를 가져갔다.


그렇다면

다음에 찾아올 숙제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죽기 전까지, 앞으로 몇 개의 숙제가 더 남아 있을까. 짜증이 난다.

이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빼앗겼는데, 다음 숙제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더 가져가려는 걸까. 정말 화가 나는 건,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이다.


건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정말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망가졌다. 목숨은 지켰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 모르지만, 걷기를 포기한 채 살아야 할 미래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남은 인생이 지겨워진다.


젠장.

나의 가장 즐거운 취미를 돌려줘.


억울하다.


많이.


늙어 죽을 때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걷고 싶었는데.


앞으로 감각이 희미한 다리로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죽을 때까지 걸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인생이니까. 나에게 온 숙제니까. 그동안 많은 굴곡과 고비를 넘기며 아프게, 오래 버텨 왔는데. 이번에 찾아온 숙제는 [걷기]라는 내 삶의 유일한 의미 하나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래도 이겨 내야지.

또 버텨 내야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얼마나 많은 숙제가 더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더 풀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풀어야지.

그게 삶의 이유일지도 모르니까.


…근데,

이 지긋지긋한 숙제들 다 하고 나면 죽고 나서 뭐 보상 같은 거 주긴 할까?


나는 오늘도 주제 파악을 하게 된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건강을 지키지 못했다.

정말 서프라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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