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먹고 살아가는 문제는 늘 걱정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나이가 꽤 많으신 동료 한 분이 계신다. 아버지보다는 젊으시지만, 그래도 예순은 훌쩍 넘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해양 판금이라는 일 자체가 위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철판의 무게는 여전히 묵직하고, 현장의 소음과 진동은 젊은 사람에게도 버거울 만큼 거칠다.
그럼에도 그분은 예순이 넘은 몸으로,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 매일같이 현장에 나온다.
그분의 현재는, 언젠가 맞이하게 될 내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의 내가 그분을 바라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 언젠가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느끼게 될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있다 보니 인지 능력도 예전 같지 않으신 거 같다. 그로 인해 불량률도 적지 않다. 자연스럽게 원청에서 들어오는 크레임의 상당 부분이 그분과 관련되어 있다.
서류 위에 남는 숫자는 냉정하고, 현장은 늘 그 숫자 앞에서 작아진다. 그럼에도 사장님은 그분께 화를 내지 않으신다. 이유는 단 하나, 모두가 그분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먹고 살기 위해, 몸이 고되고 힘든 일을 계속해 나가는 그 모습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다.
쉬어도 될 나이임에도 쉬지 못하고, 아파도 멈출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분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불량이 발생하는 것은 A/S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는, 불량률이 누적될수록 원청(물량을 맡기는 대기업)에서는 결국 발주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존경으로 버텨온 시간은, 숫자로 환산되는 순간 바로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지금 회사에 들어오는 물량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지만, 체감되는 공기의 무게는 분명히 달라졌다. 사람들 얼굴에도, 말수에도, 묘하게 가벼워지지 않는 불안이 깔려 있다.
먹고 사는 문제라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어서도 쉬지 못하고 골병이 들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어서 계속 일해야 하는 삶.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며 월급에 의존해 살아갈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된다. 지금은 아직 몸이 버텨주지만, 몸이 먼저 멈춰버리는 날이 오면 나는 무엇으로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끔은 로또라도 당첨되면 좀 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지 잘 알고 있다.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당첨금을 지키는 방법을 모른다면 결국 날려버리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가끔, 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다리를 상상하지 않으면 숨을 쉬기조차 버거워질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로또를 사 본 적은 아직 없다.
이제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AI 개발을 추진하는 수많은 기업 대표들 가운데 한 사람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I 시대에는 오히려 용접공이나 배관공 같은 직업이 더 각광받을 것이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할 수 없는 일은 결국 사람의 노동력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은 더 [사람답지 않은 노동]을 맡게 되는 아이러니한 시대가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AI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계급 체계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기술을 소유한 사람과, 기술에 소속된 사람. 선택하는 사람과, 선택당하는 사람. 만약 그런 구조가 굳어지게 된다면, AI 기술을 소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고, 그로 인해 인류의 인구수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살아남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어서 태어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생각보다 무섭다.
어쩌면 우리 세대까지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버틸 수 있고, 아직은 몸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 이어질 후손들(아들, 딸, 손주, 손녀)은 과연 어떻게 먹고 살아가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서, 어떤 조건으로 자기 자리를 허락받게 될까.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이 없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럴 수 없을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거운 죄책감 때문에 딸에게 특히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오늘도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모습만큼은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