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어머니
이제 2025년도도 드디어 이틀 남았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해였다.
어떻게 재정신을 붙잡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한 번쯤은 삔또가 나가 들쑤시고 다닐 법도 했을 텐데.
나는 끝내 그러지 않았다.
2025년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가져갈 만한 사건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딸에 대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친어머니에 대한 일이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딸아이는 수면제를 가져다 먹고 잠들어버렸다. 한 알도 아니고, 열 알을 그냥 삼켜버린 것이다.
약 기운이 오른 딸의 상태는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혹시라도 딸이 잘못될까 봐,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입이 떨리고, 온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약 기운에 제정신이 아닌 딸을 살리기 위해 야밤에 아이를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난리가 났다.
전화를 돌리고, 발로 뛰며 찾아 헤맨 끝에 감사하게도 딸아이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와이프와 나는 서로 병원에 붙잡혀 살다시피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다행히 딸아이는 병원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은 덕분에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정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두 번째는 친어머니에 대한 사건이다. 나는 살면서 친어머니의 얼굴을 모르고 살아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친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도망치듯 집을 떠나셨다. 그 후로 어디에 살고 계신지만 알 뿐,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여름 더위가 막 누그러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화성시 장안 면에서 등기 한 통이 집으로 날아왔다.
나는 현장에 있어 직접 받지 못했고 와이프가 등기를 확인한 뒤 문자로 알려줬다. 그 문자를 받은 순간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뒤엉키기 시작했다. 등기로 온 내용은 친어머니의 신변에 관한 것이었다.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라 국가 지원금을 신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와이프는 나에게 말했다.
[멍청한 짓 해서 딸한테 피해 가는 일 만들지 마라. 가만히 있으면 된다.]
혹시라도 내가 이 일에 끼어들까 봐 와이프는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이미 친어머니는 가정을 따로 꾸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와이프에게 반감이 생겨 싸우지는 않았다. 와이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나도, 와이프도 지금껏 생사만 알고 있던 친어머니의 신변 문제로 복잡한 일에 휘말려 우리 딸이 피해를 입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가만히만 있다면, 친어머니의 신변에 대한 문제는 그분이 새로 꾸린 가정이 결정할 일이었다.
와이프는 아직도 내가 이 일에 끼어들까 봐, 종종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확인하곤 한다. 나 역시 그러고 싶어도 딸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진심으로 괴로운 것은, 친 어머니의 생사를 모르고 살아왔고, 또 모르고 살아야 하며, 아마 모르고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이것 역시 내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니 괴로움도 어느새 익숙해진다. 물론 이 문제는 2025년 한 해로 끝날 일도, 쉽게 정리될 문제도 아니다. 가난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고는 하나, 자식으로서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라는 존재를 모르고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죽게 될 것이다. 이것 역시도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내가 살면서 가장 부러운 존재는 배가 다른 동생이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재혼을 하셨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재혼하셨지만, 새어머니와의 사이는 늘 칼로 물 베기였다. 싸움이 있을 때마다 새어머니는 배 다른 동생을 안고 새 외할머니 댁으로 가셨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배가 다른 동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았지만, 동생은 늘 누군가의 품 안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품에서 자라 재롱도 부리고, 교감도 하며 자란 동생은 감정도, 감성도 풍부하다. 사람들 틈에서 대화를 이어갈 줄 알고 그래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2025년, 올 한 해는 정말로 힘들었다.
그나마 내가 맨 정신을 붙잡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딸을 낳아준 와이프에게 나는 늘 고맙고, 또 감사하다.
이제 징글징글했던 2025년도도 이틀 남았다.
그리고 2026년, 새해가 온다.
2026년에 또 어떤 숙제들이 찾아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2025년보다는 덜하리라 믿고 싶다. 2026년에 찾아올 숙제들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2025년에 겪었던 것들보다 더 힘들 수 있을까.
정말,
인생이라는 것도,
운명이라는 것도,
참으로 징글징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