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12

데이트

by 가비


오늘, 2025년 12월 31일은 딸의 방학식 날이었다.

그래서 어제, 12월 30일 오후 6시 반쯤 딸에게 카톡 하나를 남겼다.


[딸~ 방학 기념으로 아빠랑 데이트해 줌~?]


딸이랑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와이프 몰래 딸이랑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수다도 좀 떨고, 괜히 그런 장면들을 혼자서 미리 그려보며, 혼자 희망회를 돌렸다. 그런데 이 시간까지 답장이 없다. 집에 와서 불러봐도, 아무 대답이 없다. 딸은 자기 방에서 조용히 책만 읽고 있다.


괜히 문 앞에 서서 눈치만 슬쩍 살폈다. 어째서인지 나는 딸의 뒷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최근에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곰곰이 되짚어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다.


속이 상한다.

나는 지금 이 나이 먹고, 딸이 읽고 있는 책에게 질투를 하고 있다.


와이프에게 말했다.


“딸 버릇 괜찮음? 카톡 읽씹하고 답장도 안 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사춘기 딸 건드리지 마.”


역시 부부는 남이라더니, 여자의 적은 여자라던데, 이럴 때는 또 내가 공공의 적이 된다.


아... 고독한 가장의 서러운 인생이여.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하나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느 악마가 슬쩍 속삭인다.


[가출해 버려.]


정말 유쾌한 만화의 한 장면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외치고 싶어진다.


“다 미워. 나 가출할 거야!!”


라면서 투정을 부리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은근슬쩍 악마의 속삭임에 이끌리려는 순간,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만둬. 네가 가출하고 나면, 네 가족이 얼마나 슬퍼할지 생각해 봐.]


나는 악마의 속삭임과 천사의 속삭임을 저울의 양쪽 접시에 올려놓고 잠시 저울질을 해본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가 울고 불며 투정을 부리면서 가출한다고 해서 딸과 와이프가 정말 슬퍼할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악마의 속삭임보다 천사의 속삭임을 선택했다.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투닥거릴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게

나는 참 고맙고 감사하다. 와이프에게도, 딸에게도.


어릴 때는 그렇게 “아빠, 아빠” 하며 안 떨어지려 하던 딸이 어느새 사춘기가 되어 저렇게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걸 보면, 괜히 서운하면서도, 또 괜히 즐겁다.


이대로,

건강하게만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이제 2026년 새해다.


2026년에도, 이렇게 투닥거리고, 서운해하고, 그래도 결국은 서로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 사랑스러운 가정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무사히 계속 지켜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미 2026년 1월 2일과 1월 3일은 출근이 잡혀 있다.


나는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내 건강이 허락해 주는 순간까지 당연히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딸에게 신청한 데이트는 사뿐하게 즈려 밟혀서 슬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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