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16

중독

by 가비

나 스스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겁대가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때가 항상 있다.

이 주장에 대한 분명한 근거는 다름 아닌 나의 [첫 작품]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겁대가리가 있었다면, 그러한 글은 절대 쓸 수 없을 것이다. [쓰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첫 작품을 구상에 들어갔다. 망설임도 없었고, 젊은 패기만 믿고 두려움도 없었고, 돌아볼 줄도 몰랐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실패가 무엇인지도,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던 폭주한 망아지와 같았다.


첫 작품의 내용은, 한국인이라면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상당히 위험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북한이 2차 남침을 일으킨다. 한국은 동맹국들의 힘으로 한반도를 수복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명분으로 북한의 영토는 본래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며 한국의 동맹국들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결국 중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동맹국들은 수복된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따라, 중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해 군대를 남하시킨다. 이야기는,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구상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2003년,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바라보며 내가 느끼던 불편함을 그대로 이야기의 중심에 끌어다 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겁대가리]라는 개념 자체가 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나리오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 이후로 동북공정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작가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뻔하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구상했고, 기어코 써냈고, 기어코 출판까지 해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정말,


[겁대가리]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또 같은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지금 새로 구상 중인 시나리오 역시 [겁대가리]가 있다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현대 인류의 모든 출발점이 된 [산업혁명]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의 시대가 열리고,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가스라 태프트 조약이 맺어지고, 그 조약에 따라 미국과 일본이 군대를 움직이고,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한반도가 갈라지고, 북한이 핵을 갖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 세계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먹고, 먹히며, 끝없는 긴장을 이어 간다.


나는 그 모든 인류의 역사를 정면이 아니라, 조금 비켜선 자리에서 우회적으로 비틀어 비판하는 [역사 판타지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정말 이 정도면 뇌에 [겁대가리]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탑재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면, 한 번, 목숨을 걸고 하나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출판까지 해내 본 사람만이 아는 그 감각 때문일까?


많은 노력을 통해서 [완성해 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완성해 냈다는 그 감각에 이미 맛을 들여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글을 쓰고 출판을 했다는 맛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여 세상에 남겼다는 [그 맛]에.


어쩌면,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살만 루슈디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중국의 동북공정을 소재로 그런 글을 쓸 수 있었을 리 없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한국의 살만 루슈디로 완성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목숨은 하나뿐인데, 그 하나뿐인 목숨을 소중히 다루려 하지 않는 나를.


이것도 중독일 수도 있다.


목숨을 걸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중독이다. 아직은 구상 중이고 글로 옮기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작가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구상을 끝내고 모든 준비가 된 상태에서 글을 쓰는 부류와, 구상을 하면서 글을 쓰는 부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전자다.


그래서 준비가 끝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첫 작품은 13년이나 걸렸지만, 이번에 또다시 목숨을 걸고 쓰게 된다면, 13년보다는 덜 걸릴 것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뭔가 기대가 된다.

비록 첫 작품처럼 흥행을 하지 못하더라도, 또다시 목숨을 걸고 글을 쓰게 된다는 그 사실 자체에 대한 기대가.


이번에는 반드시 한국의 살만 루슈디’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


[한 번 목숨 걸고 사고를 쳤으면 됐지, 두 번씩이나 사고를 칠 필요까지 있을까?]

그래서 정말 가볍고, 재밌고, 유쾌한 시나리오를 구상해 볼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글을 쓰는 것은 재밌다.


혹시 네이버 무료 연재 게시판이나 그와 비슷한 연재소설 사이트를 가본 적이 있는가?


출판사의 컨택을 받지 못한 채, 아무 이득도, 아무 보상도 없이 그저 [읽히기 위해] 공개된 무료 연재소설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남겨진 이야기들이다.


그 모든 작품들이 노력의 대가로 출판사의 컨택을 받고, 계약을 맺고, 독자들에게 어필이 되고,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지 못한 작품들이, 현실에는 훨씬 더 많다.


안타깝지만,

그만큼 상업 소설의 문턱은 높고도 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오늘도 그 문턱 앞에 서서 이야기를 쓴다.


어찌 보면 안타깝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도 이번에 또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다짐하고 있다. 이번에 모든 준비가 끝나는 날, 기어코 읽히는 글을 쓰고 말겠다고.


반드시.


어쨌든,

나는 어떠한 도전이든, 도전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도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말이, 목숨을 걸고 글을 쓰는 맛에 중독된 나에게도 해당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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