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척추 3번과 4번, 그리고 5번 사이에 생긴 미세한 디스크 때문에 왼쪽 다리를 예전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된 이후로,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던 [걷기]를 포기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되어 간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거의 방 안에 처박혀 지내다시피 한다. 혹시라도, 아주 희박하게 남아 있을지 모르는 회복의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상태가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학적인 이유도 포함이 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살아오면서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말이 씨가 되는 경우]을 직접 보고, 또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이지만, 차라리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분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애매하게 아프고, 애매하게 불편하고, 애매하게 일상만 제한되는 이 상황이 오히려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새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느끼는 이 스트레스는 [건강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걷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죽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상태도 아니고, 당장 삶이 무너질 정도의 상태도 아니다.
목발이 필요할 정도도 아니고, 완전히 걷지 못하는 상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취미를 잃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오늘은 정말 시간이 가지 않는, 주말의 일요일이었다.
다리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 채 집 안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했다. 안 그래도 시간이 남아도는데, 음악을 들으며 걷던 취미마저 사라지자 시간을 보내는 일 자체가 더 어려워졌다.
문득, 살아간다는 것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마 문제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나 보다. 내 인생에서 음악을 들으며 걷는 취미는 이제 내려놓아야 할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취미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것도 느꼈다.
남은 시간은 유난히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고민하다가, 문득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첫 작품을 쓰며 터득했던 시나리오 구상법이 떠올랐다.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남아도는 시간을 시나리오 구상에 투자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음악을 들으며 걷던 시간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기도 했다.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음악을 들으며 걷던 시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무의미한 낭비와도 같았다. 비록 몸은 불편해졌지만, 나는 시나리오 구상이라는 취미를 통해 다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구상한 시나리오를 글로 옮기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극한에 가까운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일 또한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 나의 의지와 나의 영혼은 내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굳이 이걸 다시 해야 해?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솔직히 섣불리 다시 도전하는 것이 두렵다.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다가 포기해 버리면 그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그만]이, 나를 더 오래 붙잡아 둘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된 것도 하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구상한 이야기들이 읽히는 글이 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상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면, 이 두려움조차 나를 다른 길로 이끌어 준 작은 분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내 몸은, 내 의지는, 내 영혼은 여전히 걷고 싶어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둘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글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뭐, 어찌 되었든
다리 때문에 선택권은 없으니까.
근데 진짜 요즘 추세가 시나리오 1화당 적정 분량이 미공백 5천 자(네이버 기준) 던데 도전하기가 무섭기는 하다(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