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14

정신병

by 가비

나는 잘 늙어 가고 있는가?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자주 해왔다.


[나는 지금, 잘 늙어 가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히 나이가 들고 있다는 사실을 묻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나이를 쌓아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나는 이미 건강이라는 재산을 잃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잃는다.

체력도, 기회도, 사회에서의 자리도 조금씩 줄어든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내가 나로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닳아 없어지듯 사라지고 있는지다.


[잘 늙는다]는 것은

단지 오래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책임을 끝까지 지고 후회와 피로와 체념 속에서도 나 자신의 이름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결국 이렇게 바뀐다.

나는 아직, 나로 살아 있는가?

나는 아직 내 삶의 주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고, 아직 나의 존엄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잘 늙어 가고 있는가?]


아마 이 질문을 읽으면 [왜 이런 헛소리를 하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 제대로 늙어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해 본다면,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몸의 병이 아니라 정신병 같은 마음의 균열이다.


공허, 무기력, 이유 없는 분노, 사라져 가는 자존감과 관계의 단절. 이것들은 모두, 기나긴 삶의 노고 속에서 삶의 형태를 잃어버린 노화가 남기는 흔적이다.


나는 그것이 [정신이 병든다]는 말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주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잘 늙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지친 현실 속에서 마음에 금이 가고, 그 균열이 언젠가 나도 모르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터져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나름의 마지막 안전장치에 가깝다.


어쩌면, 이 질문은 내가 나를 망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작은 제동일지도 모른다. 설령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마음의 균열로 어느 날 뜻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나 하나로 인해 나와 무관한 누군가가 상처받는 일만은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잘 늙어 가고 싶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고 곧은 길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삶을 통해서 겪으며 이미 지나왔고, 지금도 지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나가게 될 시간이 끝내 증명하게 될 현실이자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잘 늙어 가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해내지는 못한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은 서로 다르고, 그 다름 속에서 쌓인 노고의 무게 또한 다르다.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노화는 삶의 형태를 지켜내지 못한 채 정신병이라는 마음에 균열을 남긴다.


그 균열은 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잘 늙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종종, 앞으로도 잘 늙어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문다.


잘 늙고 싶다. 그리고 잘 늙어서, 나에게 주어진 명줄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 조용히, 제 모습으로 잘 죽고 싶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아주 자주,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남긴다.


[나는 지금, 잘 늙어 가고 있는가?]


이 바람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 늙어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떠난 뒤에도 이 시간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 역시 서두르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자기 모습 그대로 나이를 쌓아가다가 조용히 잘 죽을 수 있는 세상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런 평화로운 시간이, 아주 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분쟁을 만들고, 서로를 희생시키며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그 평화로운 늙음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또한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을 조금 괴로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을 지켜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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