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26

재미

by 가비

나는 21그램이다.


1907년, 던컨 맥두걸의 실험에서 한때 그렇게 불렸던 무게.


나는 육체라는 야수 같이 생긴 용기에 담겨 인생이라는 것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데이터를 수집하듯 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는 가장이며, 용접이라는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문학은 의식의 연장선이다.]


나는 이 문장을 좋아한다. 이 문장을 처음 만든 사람이 정말로 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문장은 마치 나를 창조한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사명처럼 느껴진다. 다만 이 문장이

지금의 나를 글 앞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과장하자면, 어두컴컴한 방에 가둬 두고 글만 쓰라고 한다면, [어이구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개소리든 의미 없는 개소리든 써버리면 그만이니까.


평일이면 새벽 5시 50분,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고 나는 근로계약을 맺은 직장을 향해 출근한다.


내가 생계를 위해 하고 있는 용접이라는 노동은 숙련이 되어서 그런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단지 육체적으로 힘들 뿐이다. 그 육체적 부담 때문에 2025년을 최악의 해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허리에 문제가 생겼고, 왼쪽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 건가 싶었다.


다행히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을 만큼 회복되었지만, 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니 가끔씩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기처럼. 처음에는 넘어져서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익숙해지고 나니 중심을 잃으려는 몸을 다시 붙잡는 일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묘하게 재미있어졌다.


나는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습관은 확신 없이 가질 수 없다. 확신은 경험에서 나온다.


쓰다 보면 경험이 쌓이고, 경험은 확신이 된다. 확신은 자신감이 되고, 자신감은 글의 범위를 넓힌다. 그렇게 쓰다 보면 글쓰기는 결국 습관이 된다.


중요한 건 습관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쓰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인류의 역사 어딘가에 남을 수밖에 없는 문장이나 작품 하나쯤은 남기게 되지 않을까?


진정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그 열망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가 남긴 글이 나 대신 더 오래 이 세상을 살아가 주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나는 나 대신 살아줄 글을 쓰고 싶었고, 실제로 그런 글을 썼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미친 듯이 쓸 것이다. 만약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미쳐서라도 쓸 것이다. 그것이 내가 21그램으로 창조된 이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무엇보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할 때와 실제로 쓰고 있을 때, 그리고 다 쓰고 난 뒤에 느끼는 감정은

가정에서 느끼는 행복과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무슨 글을 쓸까?


벌써부터 고민이 되고 벌써부터 고민이 되니 즐거워졌다.


이것이 글을 쓰는 재미다.


비록 나는 대한민국의 가난한 비기득권 노동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글을 쓰는 재미를 알아버린 전직 글쟁이이기도 하다.


재밌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래서 나는 미쳐서라도 글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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