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27

스승

by 가비

내가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글을 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스승 같은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부산으로 내려온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과의 인연은 운명이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나의 필력은 그분에게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게 말했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도]라고. 글을 통해 중간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좋은 글은 쓸 수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숙제로 남겼다. 해답을 얻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기초적인 한자의 의미만 떠올려도 풀 수 있는 숙제였다.


중도를 지킨다는 것은, 결국 중간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중간을 지키지 못하면, 지키지 못한 만큼 적이 생긴다. 중간을 지키지 못하고 적이 생긴 글은 글이 아니라 분쟁의 씨앗을 낳는 흉기다. 그분의 말은, 글을 통해 적을 만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라는 의미였다.


중간을 지키지 못하면 적을 만들고, 중간을 지킬수록 친구를 만든다.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중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은 단지 감정만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떠받치는 설득력이 필요하고, 그 설득력을 떠받치는 지식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글로 설득하는 방법에 가깝다.


물론 설득하려다 보면 누군가는 다칠 수가 있다. 여기서 다친 다는 것은 상처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설령 글을 쓰는 화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글을 갈망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나보다 훨씬 유능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로 설득하려 들수록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나의 무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통해서 기교를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보다 유능한 사람들은 글을 통해 알고 싶어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의 세월을, 그 시간을 견뎌온 흔적을, 그리고 그 노고를 느끼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오직 그것만을 글로 옮기고 싶었다.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표현할 수 있는 곳까지 표현하자고.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글로 설득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세월과 흔적, 그리고 노고를 글로 옮기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그것 또한 선을 지켜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법을 스스로 익히고 터득해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기도 글이고, 일기도 쌓이면 책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책이 된 일기도 설득력이 있다면, 분명 존경받는 작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그런 글은 아니었다.


나의 세월을 늘어놓은 글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함부로 빼앗거나 낭비 하지 않는 글.


나를 옮긴 글이 아니라, 세상을 옮겨 놓은 글을 쓰고 싶었다. 이렇게 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보면 난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 세상을 옮겨 놓은 글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할 것이고 더 많은 글을 쓰면서 배워야 할 것 같다.


인생은 배우는 재미로 산다고 생각한다. 하나씩 조금씩 배우고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재미.

나는 그래서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고 목표는 세상을 옮겨 놓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글을 쓰면서 배우는 재미 그리고 내 것으로 만드는 재미.


이렇게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단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가르침을 주는 스승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진짜 의미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글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 졌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도 다 운명일까?

그리고 과연 나는 임종 직전에 세상을 옮겨 놓은 글을 완성하고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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