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25

암살

by 가비

꼭두새벽부터 출근하면서 겨울 때문에 기분이 상해버렸다.


겨울을 암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겨울을 암살해버리고 싶다.


진심으로. 진지하게.


내 인생에서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를 영원히 삭제해버리고 싶다. 오늘은 정말 겨울을 향한 나의 마음은 극단적으로 분노와 증오가 솟구치는 그런 출. 퇴근길이었다. 만약 겨울을 암살할 방법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겨울을 영원히 임종시켜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유감스럽게도 겨울을 암살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있어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겨울도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버르장머리 없는 강 추위를 맞으며 출퇴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겨울을 암살을 시켜버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겨울은 형체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형체가 있었다면, 나에게 임종당했을 테니까(응?)

근데 이번 주 동안 춥다고 한다. 왜? 대체 내가 겨울한테 뭘 잘못했는데? 왜 내가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아… 가난한 비기득권자의 삶이란 꼭두새벽부터 추위에 떨면서 노가다판으로 향해야 하는 팔자인 건 어쩔 수 없나 보다(응?) 정말 겨울을 암살할 방법만 있다면 굳이 이렇게 추위에 떨며 출퇴근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이게 다 겨울 때문이다. 겨울만 없다면...!!! 겨울이 싫다...!!! 겨울이 싫다고...!!!


이 추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건 계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이 출근 자체를 없애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꼭두새벽부터 추위에 떨면서 출퇴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살고 싶다. 주식 투자로 대박이 나면 가능할까? 로또? 요즘은 코인으로도 인생이 바뀐다던데?


하지만,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제 자기 전에 해외 개인 출판사 한 곳에 또 번역 원고를 제출했다. 마음에 들면 연락 오겠지. 한 곳만 걸려라. 안되면 3월 달에 내 돈 주고 자비 출판하면서 자폭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으로 제출했다.


해외에서는 “내 돈으로 책을 냈다 = 종 친다”는 말이 있다. 과거 자비출판이 판매 실적이 낮으면 ‘검증 실패’로 간주되던 데서 나온 이야기다. 물론 지금은 KDP 등 플랫폼 덕분에 판매량과 독자 반응이 중요해졌지만, 퀄리티가 낮거나 판매가 전혀 없으면 일부 에이전트가 검토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한 번 정통 출판을 경험한 작가는 해외 에이전트가 거들떠보려는 경우라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국내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글쟁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규모가 작은 정통 출판사라도 필사적으로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


오늘 하루는 그런 느낌으로 시작되었다.


가난한 비기득권자다 보니 오늘도 어김없이 꼭두새벽에 추위에 떨며 직장으로 향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7시에 도착했고 7시 10분에 사장님이 도착했다. 아침부터 사장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휴게실에서 히터를 틀어놓고 평소처럼 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응?)


8시에 일을 시작했고 9시 30분에 믹스 커피 한 잔, 10시에 또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응?)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직서 쓰러 왔습니다]
[꺼져. 너 말고 없음 ㅅㄱ]
[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났다. 이 정도로 꼬장을 부리면

[알았어 꺼져. 너 말고도 대체 인력 많음 ㅅㄱ]

이럴 법도 한데, 왜 저러시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퇴사도 마음대로 못 하는 비 기득권자의 삶이란.


뭐,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내 팔자다.


그래도 요즘 같이 비 기득권자들이 힘을 못쓰는 시대에 제발 좀 붙어 있어라고 잡아주시는 사장님이 있다는 게 또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가?


퇴사가 불발된 이후에 딸한테는 문자를 보냈다.


[엄마한테 칼질하러 가자해 봐]


와이프도 칼질이 그리웠는지 딸을 통해서 바로 예약 날짜를 잡은 걸 알렸다.

2월 8일에 예약했다는데 근데 지금 1월 20일인데?


와이프한테 직접 물어볼까 하다가 어차피 지금 또 칼로 물 베기 중이라 당연히 무시당할 거 같아서 넘어가버렸다.


정말 인생 되는 게 없다. 겨울 암살도 못해 추위에 떨면서 출퇴근해야 돼 퇴사도 못해 또 칼질하러 가자했더니 2월 8일에 예약을 해

뭐 이 따위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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