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24

현장

by 가비

골치 아픈 하루였다.

아침 7시 10분, 사장님이 도착한 그 순간부터 나는 고민만 하다 시간만 다 흘려보냈다. 결국 퇴사와 사직서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근무가 시작되자마자 사장님은 납기 문제로 거래처에 물량을 납품하러 하루 종일 차량 운전대를 잡고 바삐 움직이셨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2시 반이나 3시 반쯤에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하여 눈치를 봤지만, 사장님은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1시에 바로 퇴근을 하셨다.


일을 하기 싫어서 퇴근하신 것은 아니었다.

금요일에 거래처 A/S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고, 그 사고 처리를 위해 퇴근하신 것이다. 어쨌든 퇴사와 사직서 문제는 내일 안으로 반드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이력서는 넣었고, 연락이 오면 면접도 봐야 한다.


이 상태로 질질 끌다 면접에 합격이라도 해서 출근 날짜가 잡히면, 그건 그거대로 더 골치 아픈 일이 된다.

오후에는 현장에서는 신경질과 짜증, 욕설이 난무했다. 물론 오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작업 현장은 어딜 가나 이런 분위기라고 나는 자신 있게 단정 지을 수 있다.


오늘은 오후 내내 여기저기서 느껴지고 들리는 짜증과 신경질과 욕을 들으면서 작업용 망치를 집어던지고, 짐을 싸 들고 그대로 도망쳐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참으로 힘든 하루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장은 언제나 선을 지키지 못한 감정들이 난리부르스를 추는 전쟁터와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일이 힘드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 그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정신적·심리적 피로까지 겹치면 감정은 무너지고, 노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행동들을 하게 된다.


용접사인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을 하다 보면 작업 망치를 집어던지는 일쯤은 다반사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때가 있다.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작업 망치를 집어던지는 것까지는 괜찮다.

재밌고 웃긴 건, 던져놓고 나서 어디로 굴러갔는지 몰라 그 작업 망치를 찾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특정 목적지를 향해 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냥 돌을 던졌는데 지나가던 개구리가 맞았네?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진짜 지나가는 개구리나 맞고 죽어라라는 식으로 던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사람에게만 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응?)


현장 일이 다 이런 거 아닌가 싶다.


힘들면 뭐든 집어던지게 되고, 집어던지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토해낸다.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면서라도 버틴다. 그렇게라도 해야 현장 일을 계속 버틸 수 있다.


그게 바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정말 사직서를 쓰고 퇴사를 결심해서 그런 걸까.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욕과 짜증, 신경질이 난무하는 이곳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가슴이 답답했고, 숨이 막혔다. 어차피 이곳을 떠나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또 다른 현장을 만나게 되더라도 모양만 다른 똑같은 사람들이고, 똑같은 현장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래도 지금 이곳만큼은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어차피 나는 가난한 비기득권자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욕설과 신경질, 짜증이 난무하는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 가끔은, 이런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간혹, 노동자들은 그런 생각도 한다.


[한 놈만 걸려라]


물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이다. 하지만, 간혹 보면 현장에서 고성이 오고 간다. 서로 한놈만 걸리게 된 경우가 그런 경우다.


그래도 폭력은 주고받지 않는다. 법은 무섭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법 하나만 어겨도, 다시 일어서는 일이 쉽지 않다.


그걸 알면서도 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스트레스라는 건, 그만큼 무섭다.


하… 아…

노가다판 막노동자들의 삶이란, 정말 구질구질하다.


딸만 아니면 이 미친 짓거리를 하겠냐마는, 딸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그나마 이 미친 짓거리라도 하고 있으니, 딸도 잘 키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아…

내일은 제발 사직서와 퇴사에 대한 마무리를 해야만 한다. 이곳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근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옮긴 회사가 여기보다 더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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