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23

외식

by 가비

딸의 허락을 받은 덕분에 오랜만에 세 식구가 모여 오붓하게 외식을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자기 방 안에서 책만 읽느라 같은 집에 살면서도 자주 볼 수 없던 딸의 모습을, 오늘은 유독 자세히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은 덕분일까?. 우리 딸의 모습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도 아내도 외모가 특별히 훌륭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저 눈, 코, 입. 귀, 가 제대로 붙어 있어서 다행이인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딸에 대해서만큼은 늘 비슷한 말을 듣는다.

[어머, 연예인 시켜도 되겠어요.]라는 말은 듣지 못해도,

[어머, 정말 예쁘게 잘 키우셨어요.]라는 말은 항상 듣는다.

딸은 식습관이 나를 닮았다. 한 번에 많이 먹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먹는다. 그래서인지 소화가 될 즈음 또 먹게 되고, 그 덕분에 살이 잘 찌지 않는다. 4/4 사이즈는 못 입어도 5/5 사이즈를 입을 만큼 날씬하다.

피부는 맑고 하얗다. 머리카락은 직모인데 그건 아내를 닮았다. 아주 약한 바람에도 살랑살랑, 출렁이듯 흔들린다. 하지만, 머리카락 색깔은 연한 자연산 갈색이다. 이 것은 나를 닮았다.

아내는 나보다 여덟 살이 많다. 이제 막 쉰을 넘겼지만 같은 여자가 봐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동안이다. 내가 처음 아내를 꼬셨을 때 그녀는 33살이었다. 그때도 지금보다 더 완벽한 동안이었다.,

25살이었던 나보다도 더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네가 피부가 하얘서 딸도 피부가 하얀가 보다. 머리카락 색도 네 머리 닮아서 그런 것 같고.”

물론 정말 연예인을 해도 될 만큼 아름답게 자라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마녀와 야수 같은 외모가 훌륭하지 못한 부모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치고는 이 정도면 충분히 유니크하다며 아내와 나는 만족하면서 우리는 딸을 많은 노력을 쏟아 부우며 잘 키우고 있다.

우리 세 식구가 외식을 하러 도착한 식당은 피자와 뇨끼를 파는 곳이다. 음식 맛이 나쁘지는 않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피자는 그렇다 쳐도 뇨끼라는 음식은 여전히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 뇨끼란, 대충 간을 맞춘 죽덩어리에 식빵 조각 같은 걸 얹어놓고 2만 원을 받는 음식이다. 그런데도 아내와 딸은 이걸 정말 맛있다며 잘도 먹는다.

여담이지만, 아내와 연애를 하던 3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파스타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시절에도 나는 막일, 그러니까 용접 일을 하고 있었고 파스타집에 가더라도 항상 밥이나 식사류를 골랐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아내는 내 눈치를 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오늘의 외식은 딸의 허락으로 얻은 소중한 시간이다. 이 자리에서 투덜거릴 수는 없다.

싫어도, 맛있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나는 식사를 하는 척하며 딸이 먹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스럽다.

우리 딸은 나와 와이프가 죽은 뒤에도 우리 부부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이며 산 증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딸에게 늘 미안하고 죄송하다.

그 이유는 내가 가난한 비기득권자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비기득권자이기에 몸이 아파도 일을 해야 하고, 아파도 돈을 벌어 딸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미안하다. 딸에게 가난을 물려주게 될 것 같아서, 그 사실이 가장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후에도 딸이 조금이라도 덜 힘든 삶을 살기 위하여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뭐라도 하나는 남겨주고 싶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이 학창 시절을 지나오는 동안 아직까지는 권력이나 기득권을 가진 부모의 자녀들과 큰 분쟁 없이 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아무 일 없이 학창 시절을 마쳐주기만을 바란다. 딸이 기득권과 권력을 가진 부모의 자녀들과 분쟁만 겪지 않는다면 우리 세 식구는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 점 하나는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계속 해외 번역 출판에 매달리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혹시라도 딸이 학창 시절을 완전히 마치기 전에 학교에서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부모의 자녀와 분쟁이 생기게 된다면, 내가 보호를 해줄 수 있는 만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해외 번역 출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다. 적어도 딸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세 식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이렇게 딸의 허락 덕분에 행복하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내일 출근해서 퇴사에 관한 일을 정리하는 것뿐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7시다. 사장님은 7시 10분쯤 도착하신다. 근무 시간은 8시부 터지만, 현장 직원들은 보통 7시 35분쯤 하나둘 모인다.

7시 10분, 사장님이 사무실에 도착하시면 나는 이렇게 말하면 될까.

[사직서를 쓰러 왔습니다.]

아니면

[허리 때문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게 나을까.

사실 사장님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다.

[그래, 정리하자.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내가 바라는 대로 쉽게 맺고, 쉽게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건 하나뿐이다. 서로 감정 소모 없이,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나의 퇴사가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그러나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하든, 결국 정리될 거라는 사실을.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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