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결단
오늘은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출근하지 않았다.
이 행동 하나로 충분했다.
내가 퇴사를 결심했다는 사실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월요일부터 어떤 이야기가 오가든 상관없다. 퇴사에 대해서는 나는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다.
더 머물러 봐야 남는 것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뿐일 것이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날씨는 포근하고 선선했다. 이래서 부산이라는 도시는 좋다. 겨울은 지나치게 춥지도 않고, 여름 또한 지나치게 덥지도 않다. 부산은 물가도 그렇지만, 계절마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다.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서도, 부산은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지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직장 문제와는 별개로, 오랜만에 바다를 보러 다녀왔다. 평소에는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바다를 찾지 않는다.
바다로 흘러드는 낙동강이 걸어서 5분 거리에 흐르고 있으니, 굳이 바다를 보러 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바다까지는 지하철로 일곱 정거장. 멀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바닷바람은 시원했다. 겨울이었지만 분명히 시원했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며 내 마음과 함께 출렁거렸다.
나는 바닷바람을 맞은 채,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평온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평온했다.
내가 느꼈던 평온은 오직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으로 유감스러운 평온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이 평온이 지구라는 거대한 전체 속에서는 단지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분쟁이 이어지고 있고,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평온함을 이 순간에도 평온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물론 그것은 이신론자로서의 이기적이며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는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간절히 무언가를 바랐다.
나는 지금, 기다림과 결단이라는 큰 벽 앞에 서서 그것들과 마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의 한 유명 기자에게 번역된 소설 원고를 보내 두었고, 검토를 받고 있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조금 설명을 하자면,
2016년, 나는 국내에서 한 편의 소설을 자비 출판했다가 폭삭 말아먹은. 그 원고를 국내에서 번역가를 구해 번역을 진행했고, 번역은 마쳤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번역 사기를 당했다. 결국 다시 번역가를 구했고, 긴 시간을 돌아 끝내 번역 원고를 완성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번역은 마쳤지만, 단어수가 문제다. 완성한 번역된 원고가 대형 출판사에 제출할 수 있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규모가 작은 출판사를 찾다가 보내게 된 곳이 그 유명한 기자에게 보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완성된 원고를 해외의 한 유명 기자에게 보내 검토를 받고 있다. 문제는 그 기자가 단순한 기자가 아니라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 역시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기자이자, 동시에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기자라는 점이다.
그런 인물이 먼바다 건너, 신원조차 분명하지 않은 한 한국인으로부터 소설 원고가 도착한 것이다.
그것도 3차 세계대전과 2차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일단은 3월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결단을 내릴 것이다.
어차피 이미 대형 해외 자비 출판사에도 그 이전에 원고를 보내 검토를 받았고, 계약서 또한 받아 두었다.
어차피 돈만 주면 책을 만들어 주는 자비 출판사일 뿐이다. 인생의 한 장면으로 남길 경험이라 생각하고,
돈을 주고 책을 만들어 버리는 어리석고도 멍청한 선택을 해버리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브런치에 꾸준히 올리고 있는 글들 역시 해외에서 책으로 만들어진다면 해외의 브런치라 불리는 미디엄을 통해 홍보용으로 연재를 시작할 생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외 출판은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길다고 한다. 뭐, 그동안 글이나 계속 축적하고 있으면 될 일이다. 일단 3월까지는 계획적으로 여유가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을 하며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쉬면 될 것 같다.
잘되면 좋겠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 또한 지나친 욕심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소설 원고의 내용이 문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3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일은 드디어 딸이랑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딸이 웬일로 엄마랑 아빠랑 같이 밖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한다.
오랜만에 딸이 맛있는 걸 먹는 걸 바라볼 수 있다.
얼마나 좋아.... 우리 사랑스러운 딸이 맛있게 먹는 걸 직관할 수 있는 기회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