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29

무기

by 가비

무기를 만들면서 평화와 자유를 외치는 것은 정상인가.
평화와 자유를 외치면서 무기를 만드는 것은 정상인가.


우리 인류는, 우리 인간들은 역사를 거슬러 내려오며 끊임없이 평화와 자유를 말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모순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야 평화와 자유가 지켜지는 것인지,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결국 같은 맥락의 질문이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다.


국가라는 단위가 생긴 이후 거의 모든 시대가 그러했다.
평화와 자유는 언제나 [힘의 균형] 위에 놓여 있었고,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전제로 허락되어 왔다.

[지키기 위해서다.]

[억지력을 위해서다.]
[불가피한 선택이다.]


인류는 이를 살아남기 위한 필요악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해 왔다.

그러나 강력한 무기를 만들지 않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서로가 너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역사가 다르고, 영토가 다르고, 육체의 색깔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경계했고, 경계하는 순간 상대를 적으로 인식했으며, 적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필요로 했다.


이것은 어쩌면

진실도, 선도 명확했다면,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왜냐하면 진실도 선도 명확하고 분명했다면, 신뢰가 서로를 이끌었을 테니까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적이 되어야 했고, 그래서 무기가 필요해야만 했던 우리는 그 자체만으로 불행한 역사를 만들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 가고 있다.


어째서 다르다는 것이 적이 되어야 할 이유가 되고, 무기가 필요해지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고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 미래에 도착해 버렸다.


마음이 괴롭고 아프지만, 이 사실만큼은 쉽게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증명된 역사 앞에서 외면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진실이자 사실이다.

무기를 만들지 않으면서 평화와 자유가 지켜지는 세상은 끝내 오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한 세상은 절대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적이 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결국 불가능한 것일까.


물론 안다. 이 모든 질문이 유토피아적인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가치 없는 망상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희망한다.

어디까지나 나 역시 인간이기에 또한 이신론자로서.

언젠가 인류가 그리고 인간들이 그러한 세상에 도달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부디 인류가, 그리고 인간들이 강력한 무기를 만들지 않고도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계에
닿게 되기를 바란다.


어차피 우리는 강력한 무기를 만들면서 평화와 자유를 외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만,


나 역시 한 소녀의 아버지다.


아버지로서 내가 책임져야 할 단 한 사람, 그 소녀가 잘 살다 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내가 책임져야 할 그 소녀가 살아가기엔 너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한 소녀의 아버지로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로부터 지켜주고 싶다.

그러나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나의 명줄은 무한정인 게 아니니까.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괴롭고 슬프다.


무한정 책임지고 끝까지 지켜주고 싶지만, 이미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오늘도 딸의 허락이 떨어져 2월 8일로 예정돼 있던 외식은 1월 25일, 오늘로 앞당겨졌다.

아내는 나를 이길 수는 있어도 우리 딸은 이길 수 없다.

그만큼 우리 부부에게 딸은 소중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딸을 죽어서도 지켜주고 싶은 이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은 언제나 소녀에게 머물러 있다.

나는 아버지니까.


그래서 바라고 희망한다. 우리 인류가, 우리 인간들이 강력한 무기를 만들지 않아도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유토피아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기를.


그저 한 소녀의 아버지로서.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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