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2025년 10월 초, 새로운 번역가분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번역본을 전달받은 직후였다.
분량 문제로 대형 출판사에 제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해외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원고를 보내 검토를 받던 중 한 곳에서 피드백이 도착했다.
전체 원고가 아닌, 시놉시스와 프롤로그를 포함한 약 30페이지 분량을 먼저 제출했고, 한 달 뒤 1차 피드백을 받았다. 캐나다에 있는 출판사였고, 대표는 보스턴 대학을 졸업한 인물이었다.
제안 조건은 전자책 로열티 20%, 종이책은 미정이었다. 조건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수치가 아니라, 그 의미였다.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좋은 조건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계약하기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계약을 체결할 것을 결정한 뒤에 해외 문학 에이전트에게
[전자책 로열티 20%의 오퍼를 받았다. 오퍼 인 핸드로 검토가 가능하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나는 당당해질 수 없었다.
전자책 20%라는 제안은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글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종이책까지 가져갈 만큼의 확신은 아직 없다.]
출판사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되, 저자에게는 명분을 주는 조건. 그래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 1차 컨택을 받았을 때도, 거절할 때도 번역가분들에게 통보는 했었다. 많이 기뻐해주셨고 또 많이 아쉬워해 주셨다.
나의 판단과 결정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조건을 가지고 해외 문학 에이전트들에게 [오퍼 인 핸드]로 접근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근데 지금은 약간 흔들리고 있다.
[그냥 전자책 20프로 먹고 때려 칠 걸] 이런 후회가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제출을 하고 검토를 받는 기간이 길어지니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대로 처음 1차 컨택을 받은 것이 최초이자 최후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오히려 더 좋은 출판사 대표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든 것이 불명확해진 현재로서는 약간 흔들리게 되는 건 당연 한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노동을 하면서 고민을 했다. 캐나다 출판사 대표에게 다시 한번 딜을 넣어볼까 말까 하고. 근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모양 빠지는 행위가 아닐까?
나도 확신이 없어서 거절을 해놓고 이제 와서 [다시 한번 진행이 가능할까요?]라고 하기에는 그 출판사 대표의 자존심을 긁어놓고 배려와 존중을 하지 않는 행위가 아닌가?
그래서 아쉬움이 컸지만, 전부 내가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맞는 거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그래도 어제 2월 2일부터 검토를 시작한 곳이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야지 않나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인생을 살면서 줄을 잘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선택과 결정과 결단을 현명하게 내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캐나다 출판사의 대표가 제시한 제안을 받고 그래도 도전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면, 어떠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니까. 그래도 나는 결정했고 결단을 내렸고 지금은 다른 출판사의 관계자들에게 검토를 받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잘되면 좋겠지만, 그건 나의 욕심일 뿐이다. 단지 희망은 가질 수 있다. 그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권리니까.
지금 검토받고 있는 곳은 로열티가 40프로다. 좋은 의미로 검토가 끝나고 1차 컨택이 오게 되고 계약에 대해서 의미 있는 대화가 오고 가고 의미 있는 결정이 난다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해외 문학 에이전트들에게 [오퍼인 핸드]를 요청할 수 있다.
부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까지 카카오 브런치에 올린 주제파악의 가치도 달라지게 될 테니까.]
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뭐 아무렴 희망이라는 정신승리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권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