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36

땡깡

by 가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현장에 걸린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9시 30분.


근무를 시작한 지 이미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노동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이놈의 용접은 유독 밥도둑처럼 시간을 잡아먹는다.


현장은 귀마개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온갖 불쾌한 기계음과 잡음으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나도 귀마개를 하고 있다. 귀마개 없이는 이 소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끼고 있던 장갑과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던진 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에 배치된 정수기로 향했다.


편의로 제공되는 믹스커피 스틱 하나를 한 손에 집어 들었다. 다른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들었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받았다.


컵 안에 있던 가루들이 뜨거운 물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아직 손에 쥐고 있던 빈 비닐 스틱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커피를 저으며, 나는 다시 지정된 근무지로 돌아왔다.


아직 식지 않은 종이컵을 작업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작업 테이블 서랍을 열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보통은 두 시간 일하고 십 분 쉬는 게 규정이지만, 이 회사는 그런 규정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장님이 현장 출신이기도 해서 편의를 봐주기도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니 알아서 쉬고 알아서 일하는 것을 권장한다. 다만 그만큼 물량은 책임져야 한다.


휴대전화를 보며 종이컵을 입에 가져갔다. 나는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카페인에는 취약한 체질이라 여간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는데, 이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는 커피를 자주 마시게 되었다. 종종 종이컵에 뜨거운 물만 받아 오기도 했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커피를 타온다.


가끔은.
[내가 카페인에 중독이라도 된 건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이 어느새 종이컵은 비어 있었다. 작업 테이블 위에 빈 컵을 올려놓고, 벗어 두었던 모자와 양손에 장갑을 다시 꼈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던 노동을 이어갔다.


해양판금 용접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하여 흑유리가 장착되어 있는 용접면을 쓰지 않는다. 플럭스 용접과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오직 용접사의 기량과 감각에 의존해 작업이 이루어진다.


해양판금 용접에는 일반 플럭스 용접봉이 아니라 솔리드 용접봉을 사용한다. 플럭스 용접봉이 은색이라면, 솔리드 용접봉은 구리색이다. 녹는 점도 다르고, 용접 시 발생하는 열도 다르다.


예를 들어 플럭스 용접봉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열이 100이라면, 솔리드 용접봉은 그 절반 정도다. 그래서 해양판금 용접에서는 용접사의 기량으로 용접열 50을 직접 제어하며 작업해야 한다.


[직접 제어한다]는 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용접을 하며 발생하는 열을 토치로 가리고, 머릿속으로 용접량을 계산해 가며 작업을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요리할 때 감으로 간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플럭스 용접은 흑유리가 장착된 용접면을 쓰고 눈으로 보며 작업하지만, 해양판금 용접은 머리로 계산하며 용접을 한다. 물론 솔리드 용접에서도 용접면을 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초보들이 그렇다. 해양판금 용접은 보호구를 쓸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다시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10시.


다시 하던 일을 멈추고 모자와 장갑을 벗은 뒤 정수기로 향했다. 또다시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빈 커피 스틱으로 컵을 저으며,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서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고, 종이컵을 입에 가져갔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는 또다시 사라져 있었다.


빈 종이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쇳가루가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귀마개를 끼고 있는데도 기계음과 소음은 여전히 청력을 괴롭혔다. 나는 이곳에서 2년 동안 쇳가루를 마시고 소음을 견디며 일했다. 그리고 함께 일하던 나이 든 동료들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이곳에서의 일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오늘 사직서를 쓰고 나면 끝이다.


현장에 걸린 벽시계를 다시 올려다봤다.


어느새 10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이 회사와 이별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굳게 닫힌 현장 문을 몸 하나 빠져나갈 만큼만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흘러 들어오기 전에 몸을 빼내고 문을 닫았다.


현장에서 사무실까지는 멀지 않다. 비약하자면 열 발자국도 되지 않는다. 투명한 유리문으로 된 사무실 문을 한 손으로 밀고 들어섰다.


사무실에는 사장님의 따님과 아들이 설계를 맡고 있었고, 영업을 담당하는 이사 한 분도 함께 있었다.
어차피 사직서를 쓰고 나가면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사직서를 쓰기 위해, 한창 서류 정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장님을 향해 용기를 내 말했다.

“사직서 쓰러 왔는데요?”

순식간에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사장님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앉아봐라.”

사장님은 주인 없는 의자를 가까이 끌어왔다.

“무슨 일인데?”

사장님은 한 손으로 뒷목을 잡으며 의자에 앉은 나를 보며 말했다. 사장님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나는 오직 사직서를 쓰고 나갈 생각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들리는 말도 있고 해서, 나갈까 합니다.”

“무슨 말이고?”

“요즘 일도 없는데, 굳이 용접사 셋이나 필요하냐는 말이 한 번씩 들려서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노?”

사직서는 고사하고 오히려 사장님의 추궁에 말려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밀어 붙여야 한다. 사직서라는 고지를 위해서라도.

“그런 말이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한 사람이 나가야 한다면, 제가 나가려고요.”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일해라.”

“그만두겠습니다.”

“시끄럽다. 가서 일해라.”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이건 실패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사장님?”

“바쁘다. 가서 일해라.”

“그리고 너 요즘 왜 박스에 손을 안 대노.”


사장님이 말한 박스는 배 안에 들어가는 전기 판넬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두꺼비 집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배안에 들어가는 두꺼비 집은 매우 크고 무겁다. 만약 배가 5층으로 만들어진다면, 각 층마다 수십, 수백 개의 전기 판넬이 들어간다. 해양판금은 주로 그런 전기 판넬을 제작하는 일을 한다.


“영감님들이 불량을 많이 내서 물량 끊겼다고, 저한테는 손 못 대게 하던데요. 제가 끼어들면 눈치 보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서요.”

“앞으로 많이 바빠질끼다. 박스도 좀 하면서 도와줘라.”

“네.”

“가봐라.”

“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는 사무실을 나와 다시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현장에 들어서 내 지정된 자리로 돌아온 순간, 사직서를 쓰지 못한 분풀이처럼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나이 든 동료분들이 잠시 나를 쳐다봤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병신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외면해 버린다.


내가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나 보다


결국 사직서를 쓰고 나가는 데는 실패했다. 휴대전화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서 입사 지원을 했던 것도 모두 취소했다.


결국 나는 싫은 소리 한 번 듣고, 삐져서 땡깡 부린 사람으로 사장님 선에서 정리되어 버렸다. 쪽팔리지만, 어쩔 수 없다. 사직서는 이미 물 건너갔으니까.


퇴사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깨닫게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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