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요즘 들어 이상하게도
2025년 12월 3일에 벌어진 계엄 시도를 [실패한 사건]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더 정확히 말을 하자면, 왜 실패했는지를 반성하기 위한 분석이 아니라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성공시킬 수 있을지를 계산하는 듯한 분석이다.
이 사실을 마주하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 나라도 언젠가는 영원한 독재 국가로 굳어질 수 있겠다는
막연하지만 분명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모순이다.
전 세계의 독재 국가와 그 독재를 완성한 독재자들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이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를 앞세우며 독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이 나라의 상태가 얼마나 깊이 병들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어차피 이 나라는 2200년이면 인구 300만 명이라는 차가운 성적표가 나온 나라다. 그것도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다.
이미 실패가 예정된 국가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미래가 실패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독재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빠르게, 더 완벽하게, 더 확실하게, 더 명확하게, 더 분명하게, 더 완전하게 망하게 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만큼 이 나라가 정말로 싫어서 것일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극단적으로 망하게 하고 싶은 만큼 싫으니까?
[사랑하지 않는 대상은 지키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킬 마음이 없는 사람만이 이 나라를 독재로 밀어 넣을 수 있다.
절망적인 것은, 그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전혀 다른 의미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와 자유는 결국 독재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언어적 무기며 흉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독재 국가와 독재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21세기 대한민국판 폴 포트가 될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2025년 12월 3일은 실패한 범죄가 아니다. 더 정교하게 준비하지 못한 실패한 기록일 뿐이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실패를 다음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는 그 태도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이 다시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이 걱정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권력은 밑에서 만들어져 위로 올라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출발점은 언제나 국민이다.
따라서 그들이 다시 권력을 쥔다면, 그것은 국민의 판단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언어다.
국민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독재가 다시 오는 방식은 총과 탱크가 아니라, 국민들이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좋은 단어들’을 통해서다]
라는 말을.
[민주주의], [평화], [자유]라는 단어들은 언제든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 언어에 대한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독재는 가장 민주적인 얼굴을 하고 완성된다.
나는 그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내 딸의 인생과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2200년, 인구 300만 명이라는 성적표는 아마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다음을 기약하며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내가 지금 이 나라를 바라보며 바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국민들이 그들이 주장하고 외치는 [민주주의], [평화], [자유]라는 단어에 다시 한번 아무 의심 없이 현혹되지 않기를.
그리고 때로는 그들에게 자주 상판대기를 마주하고 묻고 싶어진다.
이미 망해가고 있는 나라를
왜 굳이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더 분명하게,
더 명확하게,
더 완벽하게,
망하게 만들려고 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