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40

선전포고

by 가비

2026년 2월 7일, 한국은 자연 질서상 봄이 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1년 365일을 24개(24 seasonal periods that mark changes in nature)의 부수적인 구간으로 나누고 24개의 구간(24 seasonal periods that mark changes in nature)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붙여서 관리를 하는데 이게 참 특이하고 독특한 문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기간을 정해서 나라를 운영을 하고 농사를 관리해 왔다는데. 그다지 불편한 점은 없어서 계속 사용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26년 2월 7일은, 그 24개의 구간 가운데 봄을 알리는 첫 번째 구간이었다.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탓에 굉장히 추웠다. 겨울바람도 고삐 풀린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다 보니, 출근하는 동안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출근길에 올랐는데, 무슨 놈의 바람이 그렇게 불어대는지 스트레스 때문에 입에서 욕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이렇게 출근하기가 힘든 날에는 말도 잘 안 듣는 세대라, 주말에 출근해 달라고 부탁을 해도 핑계를 대면서 출근을 안 할 텐데,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물건을 만들어야 납품을 하고 납품을 해야 월급이 들어오니까.


하마터면, 몸이 안 좋아서 출근을 못 하겠다고 직장 직원 톡방에 한마디 올려버리고, 그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뻔했다.


미친 망아지 같은 겨울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어렵게 출근은 했다.


노동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일을 하다 말고 믹스 커피 한 잔을 타왔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첫 작품의 번역을 맡아주었던 번역 회사와의 톡방에 인사를 올린 뒤 용건을 전했다.


[올해 여름이 지나면 영어 번역 7만 5천 단어 의뢰를 맡길 예정입니다.]


다름 아닌, 지금 브런치에 꾸준히 올리고 있는 [주제파악]에 관한 이야기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브런치에 올린 [주제파악]의 분량이 벌써 8만 3천 자를 넘겼다. 영어 번역 기준 7만~7만 5천 단어는 대형 출판사에 원고를 제출할 수 있는 분량이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 번역 원고가 7만 단어 이상이면 대형 출판사 투고가 가능하다.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면, 영어 7만 단어는 한글 기준 약 18만 글자 수면 충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경험상 첫 작품을 영어로 두 번째 번역했을 때, 한글 원고 분량은 13만 자였고, 완성된 영어 번역은 4만 5천 단어였다.


번역 회사도 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메시지를 올리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원고 보내주시면, 보내주신 원고도 최선을 다해서 번역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의 번역가에게는 직접 개인 번호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여성 번역가이며, 정말 실력이 좋은 분이다. 번역 회사에서 남성 번역가분이 번역을 마치면, 여성 번역가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검수 작업을 맡으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올해 여름 지나서 새로운 원고 번역 맡기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이렇게 미리 번역 회사에 여성 번역가분들에게 소식을 전해드렸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하고 있는 와이프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기분이 그다지 나 빠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칼부림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 지금 브런치에 올리는 거 번역 맡기려고."


설거지를 하던 아내의 두 손이 잠깐 멈춘다. 콧노래도 끊긴다. 위험 신호가 감지됐지만, 그래도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해외 대형 출판사에 제출할 수 있는 분량 맞춰보려고. 번역 비용이 좀 깨질 것 같아.”

“알아서 해.”

"당장 할 건 아니고 일단 해외 출판사에서 투자받고 출판하게 되면 하려고."

"다음 달에 350주고 자비 출판 한다고 안 했어?"

"그게 알아보니까 해외는 자비 출판하는 순간 영원히 작가 취급 못 받는다더라고"

"그래서?"

"출판사 구해질 때까지 하려고 계속 구해보려고"

"그래"

"미안"

"어차피 할 거니까 신경 꺼라는 의미로 말 꺼낸 거 아냐?"

"뭐 잘되면 병원비 미리 벌어두고 좋잖아? 가난한 데다가 암 걸리면 돈 없어서 치료도 못하고 죽잖아"

"정말 바다에 한번 던져보고 싶네. 입만 둥둥 떠다니나 확인 좀 해보게 지금까지 그 책 한 권 때문에 깨 먹은 돈이 얼마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래도 직장은 잘 구해서 굶어 죽지는 않잖아."

"됐어."


와이프에게 선전포고를 마친 직후 와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이럴 때는 눈앞에 안 보이는 게 상책이다.


"바람이나 쐬고 올게"


그렇게 나는 줄행랑을 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무슨 일 있어도 해외 출판사를 구해야만 상황이 되어버렸다.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 주제파악도 번역이 들어가려면 국내에서 실력 좋은 작가를 따로 구해서 교정과 교열 그리고 윤문작업도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완성도가 높은 번역본이 나올 테니까.


이번 달에 검토를 해보겠다는 출판사에서 혹시나 희소식이 오지 않을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늦어도 4월까지는 1차 피드백을 준다고는 했다.


1차 피드백이 긍정적으로 온다면, 전체 원고를 보내야 하고 다시 전체 원고로 검토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주제파악의 교정과 교열 그리고 윤문 작업도 마처야만 한다.


뭐 이것이 나의 계획이며 도전이다.


그냥 본전 치기만 하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손해만 안 보면, 그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성공이다.


이제는 2월 1일부터 검토 들어간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피드백만 오기만 하면 된다.


제발 좀 왔으면.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심기 불편한 와이프 피해서 집밖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아직 가시지 않는 겨울바람이 아직도 고삐 풀린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고 싶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도 심기 불편해진 와이프 눈치보기가 더 힘들 거 같아서 그냥 싸돌아야겠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때가 없다는 걸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장님이 사직서 쓰는 걸 말렸다는 점이다. 그게 아니면 정말. 와이프한테 무슨 일을 당해도 당했을 거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열심히 노동하고 검토 중인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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