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나는 정말 명절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나에게는 명절은 그저 유급으로 쉴 수 있는 휴가나 마찬가지다.
난 친아버지를 보면서 한동안 이해를 하지 못했다.
새어머니와 재혼하고 나서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죽이니 마니, 헤어지니 마니 하는 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오갔고, 그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갓난아기였던 배다른 동생을 데리고 새 외할머니(?) 댁으로 피신하는 새어머니의 모습과 새 외할머니 댁으로 피신한 새어머니와 배다른 동생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어린 나에게 그 풍경은 그저 혼란 그 자체였다. 그때의 나는 단순히 생각했다.
굳이.
재혼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버지는 왜 재혼을 하신 걸까? 왜 이렇게까지 싸우면서 함께 있어야 할까? 집이라는 공간은 편안해야 하는데, 그 시절의 집은 늘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리고 정말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재혼은 잘 선택하신 거구나라는 것을.
지금의 두 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지내신다. 그토록 격렬하게 부딪히던 사람들이 싸우면서 정이 든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잘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선택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운명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본가는 도살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명절만 다가오면, 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이번 설 명절을 1주일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들 잘 살아 있어요~ 다리도 잘 움직이고 잘 걸어 다니고 있어요~]
[날씨가 춥다 몸관리 잘하고 또 연락하자. 수고]
그리고 설 명절을 2일 앞두고 있던 날이었다.
[설날에 떡국 먹으려 오렴. 동생(배가 다른은 친구들하고 놀러 가고 없으니깐 참고하고 알았지.]
마지막으로 설 명절 당일날이었다.
[설날에 올 수 있니? 답장 줘 기다릴게]
모두 새어머니와 형식적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다. 이래서 내가 명절을 싫어한다. 굳이 친분도 없는 사람에게 친한 척, 정이 있는 척,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나를 정말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들 때도 있다.
굳이 친분도 없는 쌩판 남한테 친한 척 친분이 있는 척 정이 깊은 척 저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신세도 참.....
그래서 나는 명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연락하는 것조차 마음이 편하지 않다. 최근 2025년 가을 이후로 친어머니에 대한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나한테 연락하는 것 자체를 피하신다. 물론 나도 이것이 마음이 편하기는 하다. 이대로 그냥 운명하실 때까지 연락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아버지가 운명하시고 나면
[내가 상주 자리를 맡아서 지켜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물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상주자리를 맡고 후회하는 답과 상주 자리를 맡지 않고 후회하는 답이다.
어차피 어느 쪽 답을 선택하든 후회는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괴롭다. 차라리 상주자리를 맡지 않고 후회하는 것이 현명할지 아니면 상주자리를 억지로 떠맡고 후회하는 게 현명할지 수도 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따위 고민이나 하고 자빠지고 있는 나 자신이 참..... 그리고 이따위 고민을 하게 만든 아버지도 참.... 친분도 없는 쌩판 남한테 친한 척 친분 있는 척 얼굴에 가면을 쓰고 쑈 하면서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입장도 참...
그래서 이번 명절에는 도를 닦는 마음으로 후속작 작업에나 집중했었다. 그나마 그거라도 하고 있었으니 현실을 조금 잊고 살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식으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보다 아버지가 운명하시고 나면 마음은 홀가분할 것 같다. 친분도 없는 쌩판 남인 새어머니한테 얼굴에 가면을 쓰고 마음에도 없는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
2025년 친 어머니에 대한 사건 때문에 한 동안 많이 괴로웠는데. 사람이라는 게 신기한 피조물이다. 금세 잊히고 있다. 물론 괴로움이 잊힌다는 의미다. 친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정말 이게 참 사람 마음을 갉아먹는다. 마음이 갉아 먹히니 정신도 갉아 먹힌다. 그래도 책임져야만 하는 딸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간신히 버티고 산다.
괴롭기는 하지만, 절망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루하루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쟁인 사람들에 비하면, 살만한 삶이니 그나마 위안을 삼으며 살아간다.
딸을 키우는 재미 하나로. 그리고 딸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로.
앞으로 아버지가 운명하시기 전까지는 새어머니와는 얼굴에 가면을 쓰고 마음에도 없는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또 환장하겠다.
안 하면 그만 아니냐.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이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새어머니한테 간간히 메시지를 보내고 나면 마지못해 아버지한테 내 소식을 전하 기는 하신다.
그래서 보내는 거다.
그래도 아버지한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보다는 그게 마음은 편하니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