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76

계급

by 가비

최근 들어서 종종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 인간이라는 피조물에게 있어서 계급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선캄브리아라는 시대가 있었다. 고생대라는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공룡의 시대 즉 중생대가 존재했었다. 중생대의 종말에 대해서는 운석 충돌설이 가장 유력한 근거로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이후 신생대가 시작되었고, 인간이라는 피조물들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읽으면 "와, 지구 역사 스케일 미쳤다" 싶다가도, 정작 인간은 그 긴 역사의 마지막에 슬쩍 등장한 뒤 갑자기 난이도 헬 모드를 켜버린 느낌이다.

인간 사회는 처음부터 계급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초기 부족사회는 혈연과 협력을 중심으로 유지되었고, 구성원 간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쉽게 말해 "야, 오늘 사냥 성공하면 다 같이 먹자" 같은 분위기였다. 지도자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내 말이 법이다"가 아니라 "저기, 저쪽으로 가는 게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정도의 의견 제시형 리더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농경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땅과 식량이 쌓이기 시작하자 누군가는 "이거 내 거임"을 외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아니, 우리 거 아니냐?"를 외쳤다가 조용히 밀려났다.

이렇게 해서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이 생겨났고, 그것이 점점 굳어지면서 계급의 씨앗이 싹텄다.

한마디로 인류는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눈치 게임'도 시작한 셈이다.

이후 국가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더 복잡하게 변해간다. 왕과 귀족이 등장하고, 권력은 세습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아빠가 왕이니까 나도 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군대와 세금 제도는 이 구조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덕분에 권력은 점점 특정 집단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신분제 사회는 점차 해체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법과 제도는 형식적인 평등을 보장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이제 다 평등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경제력, 교육, 기회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계급표처럼 작동한다.

예전에는 신분증에 계급이 적혀 있었다면, 지금은 통장 잔고와 태어난 환경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셈이다.

결국 인간 사회는 평등한 부족사회에서 출발했지만, 자산과 권력을 중심으로 계급이 형성되고, 그 권력이 점차 고착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지구는 수십억 년 동안 공룡도 키워보고 멸종도 시켜봤는데, 인간은 등장하자마자 "일단 서열부터 정하자"를 선택한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제일 인간다운 선택일지도 모르겠지만, 현대 시대가 떠안은 권력과 기득권 유지라는 모든 갈등의 시작이 된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같잖은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싸우게 만든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권력의 핵심은 바로 투표권이다.

그런데 바로 그 투표권 때문에, 한국은 2200년이면 인구가 300만에 불과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2026년 3월 29일 현재, 전 세계는 핵전쟁이라는 확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2200년 인구 300만 명이라는 국가 소멸의 위기 앞에서, 오직 권력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비기득권층을 분열시키고 싸우게 만드는 일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 분열의 중심에서 비 기득권자들은 서로 그리고 스스로 싸우고 분열하고 있다. 서로 영원히 주적이 되어가면서.

그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이다.

지금 한국에서 세대 갈등의 정점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단어는'영포티(Young Forty)'다. 이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른 배경에는 2024년 12월 3일, 불법 군사 반란을 일으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세력들이 있다.

그들은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1980년대생 이전 세대와 1980년대생 이후 세대를 인위적으로 갈라놓는 세대 갈등 전략을 구사했으며, '영포티'는 그 균열을 상징하는 언어가 되었다.

분열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반드시 누군가 또는 어느 세력들이 설계하고 실행에 옮긴다.

권력과 기득권이라는 단어는 인간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악(存在惡)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달콤한 유혹을 거절하거나 뿌리칠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본성임을 알기에, 나는 텅 빈 영화관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재미없는 영화를 혼자 쓸쓸하게 지켜보듯,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자멸해 가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야 할 인간들이 끝내 해결하지 못할 문제라는 사실이기에, 지켜보는 동안 마음이 더욱 괴롭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인간이라는 피조물이기에, 같은 인간들이 자멸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리 없으니까.

한국은 이미 권력과 기득권이라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자들 때문에 망한 나라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는 그런 대한민국이 자멸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래서 이 괴로운 감정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2026년 3월 29일 현재 인간 세상은 핵전쟁이라는 확전의 늪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비 기득권자로서, 그런 세계의 정세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이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이라는 늪에 빠져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약한 나 자신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차라리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도 해본다.

결국 그놈의 계급은 인간을 스스로 멸망하게 만드는 존재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근데 진짜 대한민국의 권력자들도 기득권자들도 권력과 기득권 유지라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기는 없나 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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