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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Estelle Sep 30. 2023

지옥철에서 웃으면서 만나요

[숨 쉬는 도전 중입니다_출퇴근길 격려 프로젝트]

'우리 모두 먹고살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거야'

'저 사람도 무한한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

어제도 오늘도 생각한다. 지옥철에서.






지하철 출퇴근길은 사람이 많아 지옥 같은 출퇴근길을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지옥철'이라고 불린다. 나 또한 지옥철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으로서 '지옥철'이 주는 단어 의미에 동의한다. 아침을 기준으로 보면, 오전 9시 혹은 오전 10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하나 같이 지하철에 몸을 싣고 또 다른 오늘을 만들어간다. 대부분 표정은 안 좋다. 내 기준에서 지금껏 출근길 지하철에서 웃는 사람, 미소 짓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무표정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체로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먹구름이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비 오는 날이면 습기 가득한 공간에 빗물에 살짝 젖어 있는 누군가들과 섞여 관절통, 근육통을 느끼며 출근하는 그 시간이 '지옥'같았다.


반복적인 역정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을 무렵, 왜 이 순간을 짜증으로만 보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책임, 일을 통해 재정적인 안정감을 누리고 어디에 속하면서 자아실현을 할 수도 있는 그 순간을 맞이하러 이동하는 것인데(퇴근길이면 그걸 이루고 돌아오는 것인데) 왜 짜증으로 이 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 날부터 지옥철을 향하면서, 지옥철에 탑승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입꼬리만 살짝 올렸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잘 해결할 것만 같았다. 기분도 알 수 없이 좋아졌다. 입꼬리 하나 올린 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줄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내가 원하던 상황을 맞이했을 때, 일이 술술 풀릴 때, 과학적으로 나아가면 호르몬 조절이 잘 될 때만 발생한다고 여겼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생각해 보자. 내가 지옥철에 있다는 건 숨 쉬는 도전을 성공하고 다음 여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아침에 우린 눈을 떴다. 아침에 눈을 뜬 것부터 '고된 하루의 시작이군'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우리가 만약 아침에 눈을 뜨지 못했다면? 세상이 주는 하루의 선물을 전날을 끝으로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됐다면? 


우린 숨 쉬고 있다는, 숨 쉬면서 살아가는 나의 큰 도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태어난 김에 사는 거지' '아오 차라리 죽고 싶네' 일부는 이런 소리를 많이 내뱉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아침부터 '도전을 성공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호흡이 증명한다. 이를 인지하지 못해서 태어난 김에 살고 있고, 태어난 김에 살다 보니 사람이 바글바글한 출퇴근길 지옥철은 정말 지옥 같고, 지옥철 탈 때마다 사람들은 환멸 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훼손시키고 있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남자 주인공 '팀'은 퇴근길에 짜증 나는 순간을 마주한다. 지옥철은 아니지만 옆에 앉은 한 남자가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 소리가 매우 커 퇴근하고 있는 팀에게도 들리는 것이다. 하루를 보내면서 지쳐 있는 팀은 그 순간 분노가 차오른다. 옆 사람을 째려보고, 음악 소리에 인상은 굳어진다. 이후 팀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같은 하루를 한 번 더 산다. (팀의 가족에서 남자들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하루를 더 살 수도, 원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같은 하루를 더 산 팀은 전날 겪었던 퇴근길을 다시 한번 경험한다. 이때 그는 전날과 다르게 행동했다. 남자가 듣고 있는 음악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여보고, 짜증 대신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기쁨과 여유를 만끽한다. 




한 번의 선택이 살아가는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는 걸 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간 지옥철에서 숨 쉬는 도전을 이행 중인 나를 내가 격려해주지 못해서 후회된다.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났을까. 뭐가 그렇게 지겨웠을까. 그냥 부대끼는 게 싫다고 해도 굳이 내 몸과 마음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감싸면서까지 역정 낼 필요는 없었는데. 


우린 또 지옥철에 탑승할 거다. 아마 몇십 년은 지옥철과 인생을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매일 매주 매년 반복될 수 있는 지옥철에서의 생활을 이제는 호흡하고 살아가는 나에게 격려해 주는 시간으로 보내는 건 어떨까 싶다. 창문에 얼굴이 닿아서, 누군가 내 발을 밟아서, 자리가 좁은 데 어떻게든 탑승하겠다고 밀며 들어와서... 지옥철에서 역정 낼 순간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다만 우리 모두 삶의 승리자로 또 다른 순간을 겪기 전 '다들 먹고살기 쉽지 않겠네'라며 미소 한 번 짓고 나를 대견해해 주는 시간까지 가지기를 바란다. 나 역시 이를 지키고 있다. 환승역에서 많은 이들이 내릴 때 누군가 내리겠다고 나를 밀어서 에어팟이 지하철과 역 틈 사이로 빠질 뻔한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후' 한숨 한 번 내쉬고 '줍겠습니다' 한 마디 한 뒤 지옥철에 몸을 실었다. 이젠 당신도 이행할 차례다. 같이 해보자. 나도 옆 사람도 그 옆 사람도 한 명씩 미소를 잃지 않다 보면, 짜증 대신 무표정이라도 짓고 하루의 발걸음을 내딛는 다면 우리의 살아가는 도전을 좀 더 멋지게 시작하고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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