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도전 중입니다_일상의 감사함]
# 아침에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실는다. 중간에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고 회사에 도착한다. 발제 회의를 마치고 취재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되고 취재원 식사 약속이 없어 팀원들과 함께 식사한다. 커피도 마신다. 오후 1시 30분, 회사에서 나가 취재 장소로 향한다. 취재원 연락도 빠르게 이뤄지고, 여러모로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저녁 미팅이 없어 집으로 간다. 오늘 있었던 다른 뉴스는 뭐가 있는지 살펴본다. 날이 추워지니 몸의 긴장감이 더해져 반신욕을 한다. 반려견과 대화를 나누고(?) 잠에 든다. (점심, 저녁 일정 없는 날만 가능한 루틴)
# 토요일이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점심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는다. 간혹 디즈니플러스를 보기도 한다. 점심때쯤 방문 밖으로 '아직도 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정오까지 나오지 않자 하는 말이다. 몸을 일으킨다. 거실로 가 반려견 옆에 다시 눕는다. 배달 음식을 시킨다. 전날 취재원들과의 저녁 술자리로 숙취는 없지만 국물이 필요해 마라탕을 시킨다. 먹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좀 보고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눕는다. 잔다. 일어나니 오후 6시.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족들과 TV를 본다. 반려견과 또 대화를 나누고(?) 잔다.
간혹 내가 보내는 하루다. 자주도 아니고, 종종도 아니고, 간혹. 이렇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거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게으름뱅이의 삶을 추구하려고?' '왜 일부로 그러는 건데?' '잘못될 것 같은데' 등 다양한 의견이 속출하겠지만, 과거 나 자신에게 '뭉그적거리는 게 잘 사는 거야?'라고 질타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정신없이 사는 것보다 시간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도 '내 인생의 도전이구나' 싶다.
이렇게 호흡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내 세포와 심장은 나를 살리려고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데 왜 '성취할만한 것을 하지 않냐'라고 스스로를 꾸짖던 내가 내게 미안해진다.
'나의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유명한 문장이다. 하루를 열심히 살라고 조언 들을 때 많은 이들이 위와 같이 말한다. 단순히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로 위 문장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 오늘의 내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내일을 살고 있다? 자, 지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보자. 어떤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내일을 살고 있는 오늘의 내가 이렇게 숨을 잘 쉬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이미 난 도전하고 살고 있다. TV를 볼 때도, 출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난 간혹 성취의 의미를 두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연습 중이다.
우리 모두가 새벽 내음, 푸른 하늘, 또 한 번의 변화를 겪는 계절. 고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성취를 통한 행복으로 물들지 않길 바란다. 새벽 내음, 푸른 하늘, 또 한 번의 변화를 겪는 계절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