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텔 Estelle Jul 14. 2023

"여보, 내가 헛소리했어?"

[조현병 환자 가족의 이야기]

엄마,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날이 있어. 엄마가 병식을 깨달은 날이야.


2021년 10월 어느 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어.


아빠 : "OO아, 위 층 현관문에 엄마가 묵주팔찌를 걸어두고 왔대. 그거 창피하다고 빼달래"

나 : 무슨 소리야?

아빠 : 엄마가 알았어. 자기가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알았어. 

나 : ...

아빠 : 엄마가 위 층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고 생각해서 새벽에 묵주팔찌를 위 층 현관문에 걸고 왔대. 회개하라는 의미로. 그런데 본인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너무 창피하다고, 그 팔찌 위층에서 보기 전에 빼달래. 그것 좀 빼고 와줘.


'끝이다' 속으로 이 생각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어. 그리고 급히 위층에 올라가 새벽에 엄마가 현관문에 걸어둔 묵주 팔찌를 빼왔어. 


엄마, 엄마가 병식을 깨달은 날 저녁에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아빠에 의하면 함께 사무실로 출근하는데 엄마가 '여보 내가 요즘 헛소리했어?'라고 물었대. 아빠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대. 조현병 완치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엄마의 환청 및 망상 증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서 말이야. 


엄마의 아픔과 고통을 100% 공감할 순 없지만, 엄마, 엄마의 병식이 없던 기간 동안 아빠 많이 힘들었어. 


물론 엄마도 그간 아빠와 힘들게 살아가면서 자식 교육 시키며 고생 많았지. 우리 엄마, 남편과 자식들 '밥은 먹여야 한다'며 매일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서 해주고 옷과 교복들 다려주고... 고생했지 우리 엄마. 그리고 나아지나 싶었더니 조현병이라는 질환을 앓으면서 아픈 인생을 살았지.


엄마의 아픔과 고통을 100% 공감할 순 없지만. 엄마, 엄마가 병식이 없던 기간 동안 아빠도 정말 많이 힘들었어. 특히 엄마가 밖에서 퇴근하는 아빠를 알아보지 못하고 째려보면서 지나갈 때, 엄마가 가방에 칼을 넣고 다닐 때, 엄마가 자식들 불러다 앉혀 놓고 '집 나갈 거야. 이 집에서 나를 믿어주는 사람 한 명도 없어'라고 할 때. 아빠는 가장으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많이 힘들었어. 물론 아빠가 자식들에게 티를 냈던 건 아니야. 한 번씩 술 한 잔 한 아빠가 새벽에 내 방 들어와 자는 척하는 내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리 딸' 하고 조용히 말하고 갈 때면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어. 오히려 티 내지 않으려는 아빠 모습에 장녀인 나는 더 마음이 아팠어.



동생도 마찬가지야. 엄마의 둘째 딸, 나의 하나뿐인 동생도 엄마가 병식이 없었을 때 고생 정말 많았어.


특히 동생은 출근한 아빠 그리고 내가 출근하고 없을 때, 엄마의 증상을 오로지 다 안으며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어. 공무원 시험 준비만으로 충분히 스트레스받는 상황일 텐데 엄마가 '누군가 욕했다' '위층에서 마약 한다'며 방에 들어와 녹음기를 틀어줄 때마다 동생도 마음고생 많았어. 그래도 대견한 내 동생, 한 번씩 내게 그러더라.


"언니, 언니가 장녀여서 가족 일에 다 책임지려고 하는 게 있겠지만 좀 내려놔"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라면 가족 구성원 모두 힘들 텐데 동생은 가족들이 짐을 조금씩 내려놓도록 해주고 있었어. 또 엄마가 기억할 진 모르겠지만, 나와 아빠가 엄마에게 "제발 이러지 말아 줘"라고 말할 때마다 엄마의 환청, 망상 이야기를 들어준 건 동생뿐이었어. 처음엔 '동생이 사회복지학과 전공생이어서 그런가'했지만 어떻게 보면 엄마의 마음을 더 들어주려고 노력했던 건 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두고 생각이 많았어. 엄마가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었겠다'라는 죄책감이 들 수도 있겠고, 이로 인해 엄마 스스로 자책할까 봐. 


하지만 절대 엄마한테 죄책감 가지라는 뜻에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어. 우리 가족들은, 또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은 조현병 환자인 내 가족 구성원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걸 꼭 전하고 싶어. 뿐만 아니라 조현병을 앓는 내 가족 구성원의 말을 못 믿는 게 아니라, 그 순간 답답함과 서러움, 무서움,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요동치고 있어서 제대로 반응해주지 못했다는 것도 말하고 싶어.


엄마, 고마워. 병을 인지해서, 병을 인지하고 약을 먹으며 환청 및 망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해 줘서 고마워. 




작가의 이전글 "죽여" "때려" 매일 들리는 속삭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