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지금, 일기장을 앞에 두고 펜을 들었지만 단 한 줄의 성취도 기록할 것이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것 같기는 한데, 막상 돌이켜보니 영혼 없이 반복된 일과와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의 잔해들만이 방 안을 뒹굴고 있습니다. 대단한 프로젝트를 완수한 것도, 누군가에게 감동적인 도움을 준 것도, 그렇다고 나 자신을 위한 창조적인 취미를 즐긴 것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함의 극치인 하루였습니다.
"오늘 뭐 했지? 진짜 아무것도 안 한 것 같네."
자조 섞인 물음이 허공을 떠돌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힘없이 꺾입니다. 남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SNS에 빛나는 성장의 증거들을 전시하는데, 나는 왜 오늘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며 이 귀중한 시간을 소진해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밀려옵니다. 잘한 게 없다는 자각은 곧 내가 가치 없는 존재라는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 불안은 오늘의 수면을 방해하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슴을 찌릅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조차 오늘의 숨은 공로일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지 않았고,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해냈으며, 신호를 어기지 않고 길을 건너 무사히 저녁 식탁 앞에 앉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특별함'을 강요하지만, 사실 삶의 대부분은 이토록 밋밋하고 평범한 '아무 일 없음'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못난 하루도 내 하루니까. 그냥 안아주자."
완벽주의라는 채찍으로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오늘 하루 무사히 버텨낸 나의 평범함에 다정한 위로를 건네기로 합니다. 잘한 게 없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음 도약을 위해 잠시 에너지를 응축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해 봅니다. 우리는 매일 꽃을 피울 수 없으며, 어떤 날은 그저 단단한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침묵 속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합니다.
일기장의 빈 칸에 '무사히 귀가함'이라는 다섯 글자를 적어 넣고 펜을 놓습니다. 이 사소한 문장이 오늘의 가장 화려한 성취보다 더 묵직한 안도감을 주며 나의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잘한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루한 하루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사람의 단단한 역사가 되고 인생의 밑거름이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의 부족함은 내일의 기대로 치환되고, 나는 빈손인 채로도 충분히 따뜻한 꿈의 품으로 빠져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