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대화 너머에 있는 진심

by 동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대화는 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어렵다. 부부나 연인, 가족, 부모와 자식처럼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믿는 관계일수록 대화는 감정의 늪으로 빠지기 쉽다. 그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대화를 반복하면서도 그것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멈추지 못한다. 말을 주고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정을 주고받고 있을 뿐이다. 서로의 말 속에는 논리보다 감정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감정은 언제나 순간적이고, 불안정하며, 나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피곤하거나 아플 때, 혹은 기분이 좋을 때조차 같은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감정은 사실,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경험, 그리고 건강과 환경이 만들어낸 신호에 불과하다. 그런데 가까운 관계에서는 그 신호를 곧이곧대로 믿고 상대에게 쏟아낸다. 그 감정이 정당하다고 믿는 순간, 대화는 이해가 아니라 방어가 된다.


가까운 사이는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대화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습관은 서로의 말투, 눈빛, 숨소리 하나에도 반응하게 만든다. 한쪽이 조금이라도 날카로워지면 다른 쪽은 즉시 방패를 든다. 그리고 그 방패 뒤에서 감정을 쏟아낸다. 이 과정은 너무 익숙해서 마치 일상의 일부처럼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오가는 감정의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감정을 키운다. 그 감정 위에 또 다른 감정이 덧붙고, 예전의 상처가 덧씌워진다. 그렇게 감정은 과거의 기억까지 끌어와 현재의 대화에 섞인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서로가 말하는 것은 현실의 상황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이 된다.


감정을 표출하면 순간적으로는 마음이 편해진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이 든다. 그 순간만큼은 억눌린 것이 해소되었다고 착각한다. 상대방은 그 감정을 받아주며 잠시 침묵한다. 그 침묵은 마치 이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혼란일 때가 많다. 그래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은 점점 더 자주, 더 세게 감정을 쏟는다. 그것이 자신을 이해받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감정의 대화는 관계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처음에는 서운함이었지만, 나중에는 싸움이 되고, 결국은 단절이 된다. 감정은 결국 해결책이 아닌 불씨가 된다.


양쪽 모두 감정으로 대화하면 대화는 싸움이 된다. 한쪽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잠시뿐이다. 지는 쪽은 침묵 속에서 복수의 불씨를 키운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큰 감정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되면 대화의 목적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의 승부가 된다. 누가 더 상처를 잘 주는가, 누가 더 오랫동안 버티는가의 싸움으로 바뀐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본질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감정은 해소되었지만 상황은 더 나빠진다. 그 나빠진 상황은 다시 감정의 불씨가 되어 또 다른 대화를 만든다. 그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간다. 감정의 대화는 결국 마음을 닳게 만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아프고, 더 무겁게 남는다.


서로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멀어진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한 말들이 오히려 벽이 된다. 감정은 표현되었지만, 진심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대화에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 필요하다. 그 마음은 상대의 감정을 먼저 받아들이는 여유에서 시작된다. 내 감정을 잠시 멈추고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감정의 대화가 아닌 진심의 대화를 여는 첫 걸음이다.


옛말에 부부사이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단순히 참고 인내하라는 뜻이 아니다. 진짜 이김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감정을 수용하고 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간다. 감정의 불길을 잠시 꺼야 문제의 실체가 보인다. 감정의 연기를 걷어내야 관계의 길이 다시 열린다. 감정 너머에서 비로소 우리는 함께 서 있을 수 있다. 그곳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감정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사람이 된다면 그 관계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다만 조절할 수 있다면 그 감정은 파괴가 아닌 이해의 다리가 된다. 결국 감정의 대화가 아닌 진심의 대화가 관계를 살린다. 감정의 표출이 아닌 마음의 표현으로 바뀔 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안식을 줄 수 있다. 그때부터 대화는 싸움이 아니라 회복이 된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대화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누구에게나 생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계의 방향을 바꾼다. 감정의 대화는 순간의 불을 피우지만 진심의 대화는 관계의 등불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불빛을 가꾸는 일이다. 그 불빛이 따뜻하게 머무를 때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감정의 대화 너머에는 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이 진심으로 닿을 때 말은 싸움이 아니라 이해가 되고 대화는 상처가 아니라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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