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홀로 깨어날 때, 나는 늘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세상은 쉴 새 없이 앞으로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해가는데, 나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 있는 듯, 나는 여전히 놓아주어야 할 것에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그 대상이 사람과의 관계든, 이루지 못한 꿈의 잔해든, 혹은 오래된 습관의 낡은 끈이든 상관없이, 이미 상식적으로는 종언을 고해야 마땅한 그것을 내 마음은 굳게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제 그만이라고 수백 번 외쳤지만, 가슴은 그 외침을 듣지 못하는 척하며 낡은 그림자놀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집착이란 어쩌면 가장 잔인하고도 가장 달콤한 형태의 자기 기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붙잡고 있는 한,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고,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그 가능성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집착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꽃을 억지로 화병에 꽂아두고 매일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물은 썩어가고 꽃잎은 시들어 바스러지는데도, 나는 그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향기를 맡으려 애씁니다. 그 달콤함 뒤에는 쓰디쓴 고통과 피로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포기란 단어는 늘 패배자의 낙인처럼 느껴지기에, 우리는 그것을 피하려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진정한 포기는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나는 그 공간을 만들 용기가 없습니다. 내가 놓아주는 순간, 그동안 내가 투자했던 모든 시간과 감정, 노력의 흔적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낡은 짐을 짊어진 채로, 이미 부서진 길 위를 걷는 외로운 여행자가 됩니다. 매일 밤, 나는 그 짐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휘청거림을 느낍니다.
가끔은 이 지독한 집착이 나를 정의하는 전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것을 놓아버리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나의 정체성이 그 끊임없이 갈망하는 마음의 굴레 속에서 형성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놓아야 할 때를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 집착을 통해 얻고 있는 '나'라는 존재의 일시적인 위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삶의 방식입니까.
결국 나는 낡은 사진첩을 펴듯, 그 집착의 대상이 처음 내 삶에 들어왔을 때의 눈부신 순간들을 반복해서 재생합니다. 그 찬란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현재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마취제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시간은 가차 없이 흐르고, 마취가 풀리면 고통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나는 이 집착의 고통 속에서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그림자를 놓아주는 것은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 내가 홀로 빛 속에 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빛이 너무 밝고 눈부셔서, 나는 차라리 익숙한 어둠 속에 머물기를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그 날이 오기까지 나는 이 그림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또 하루를 살아낼 것입니다. 다만, 그 언젠가를 위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놓아줄 용기의 씨앗을 몰래 심어두고, 언젠가 스스로 싹을 우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