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호수가 바닥을 드러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찰랑이던 슬픔도, 반짝이던 환희도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것 같다. 손을 넣어 휘저어도 아무런 파동이 일지 않는 상태. 그것은 슬픔보다 더 깊은 허기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오늘의 날씨가 아니라 내 마음의 습도다. 창밖엔 비가 내리는데 내 안은 여전히 황막한 사막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니?" 나는 대답한다. "아니, 그냥 조금 건조할 뿐이야." 사실은 영혼이 쩍쩍 갈라져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너무 혹사시킨 나머지 감정이라는 자원을 다 써버리곤 한다. 기뻐해야 할 일에 무덤덤하고, 울어야 할 대목에서 하품이 나올 때, 우리는 우리가 고장 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땅도 휴경기가 필요하듯 마음도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계절에 억지로 꽃을 피우려 애쓰지 마라. 지금의 메마름은 다음 계절을 준비하기 위해 마음이 스스로 내린 결단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보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서늘한 공포가 밀려온다. 나는 정말로 차가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단지 느끼는 법을 잠시 잊어버린 것일까. 거울 속의 눈동자는 아무런 생기도 없이 나를 응시한다. 그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진 거대한 피로를 나는 애써 외면한다.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을 동경하지만, 감정이 마른 상태는 때로 가장 정직한 휴식이다. 뜨거운 열정으로 타오르던 시간들이 남긴 재가 내 마음을 덮고 있다. 그 재를 걷어내기에는 아직 바람이 부족하다. 마음의 가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우리는 그 황폐함 속에서 존재의 밑바닥을 목격한다.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고 아무것도 미워할 수 없는 텅 빈 상태. 그것은 어쩌면 과부하 된 감정의 회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차단기일 것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느끼려 애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소모적인 일이다.
나는 이제 이 건조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먼지가 날리는 마음의 들판을 걸으며, 언젠가 다시 돋아날 풀잎의 기억을 더듬는다. 습기는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심연에서 차오르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샘이 다시 고일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는 일뿐이다. 메마른 나무가 죽은 것처럼 보여도 뿌리 깊은 곳에서는 생명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듯이, 나 역시 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길러내고 있다. 누군가 다가와 내 마음을 두드려도 나는 문을 열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이 고요한 결핍 속에 머물고 싶다.
"언제쯤 다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까?" 거울 속의 내가 묻는다. 나는 그저 가만히 마른 얼굴을 쓰다듬는다. 습기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차오르는 것이기에, 나는 내 안의 깊은 샘이 다시 고이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지금 이 무감각조차, 사실은 아주 깊은 피로가 보내는 정직한 신호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감정은 강요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숲의 이끼처럼 고요하고 습한 시간이 충분히 쌓여야만 조용히 피어난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의 가뭄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타들어 가는 대지 위에서 나는 오직 기다림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언젠가 한 방울의 눈물이 마중물이 되어 다시 호수를 채울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이 건조함을 견디며 나의 알맹이를 보호할 것이다. 마른 나무가 겨울을 견디듯, 나 또한 이 무감각의 외투를 입고 계절을 지날 것이다. 가뭄은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대지는 결국 비를 만난다.